와인터널

 

문현숙

 

“아가야, 언놈이 나를 노려보고 옷을 자꾸 벗으라 한다 내 좀 살리도 제발”

 

육지 속, 또 다른 섬

먼지 쌓인 입구 쪽으로

너울처럼 밀려오는 가르릉 가쁜 숨결

늘 더디 오던 봄처럼

출구를 끌고 갈 것들은 어디쯤 표류하는지 모를, 지금

한 방향으로만 타협했을, 막바지 질주는

감속기어 없는 시간의 풍속風速

세상 아닌 세상을 더디 지나며

얼마나 더 가야만 봄날의 정착지, 가 닿을지

흔한 안내문 한 줄 찾을 수 없다

이편과 저편 사이 경계인처럼 서성이던 십수 년

바람을 포용했던 돛의 기억은 낡고 삭아

밀물 빠진 갯벌에 홀로 정박해 있다

헤진 언덕 어디쯤

닻을 못 내린 채 부러진 노가

어두운 질감을 바닥에 켜켜이 꽂는다

굳은 관절들이 비틀어진 척추마다 등을 내 건다

 

비상등이 번쩍, 달려온다

한쪽 솔기가 막힌 와인터널처럼

어머니, 남기고 갈 미련을 숙성시키고 있다

 

[프로필]

문현숙 : 경북 대구, 방송문학상 대상 수상, 2016~ 현재, 대구신문 [달구벌 아침]집필 중

[시 감상]

온 곳이 있으면 갈 곳도 있는 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야 할 시간도 있는 법이다. 보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아픔의 크기는 누구도 잴 수 없다.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그래도 아픔의 질량을 반드시 측량해야 한다면 아마, 남아 있는 사람의 무게가 더 클 것이다. 산다는 것, 그건 어쩌면 수없이 많은 아픔을 보내는 일이다. 가슴에 꾹꾹 눌러 담는 일이다. 결코 아물 수 없는 저마다의 상처 난 미련을 잠시 접어두는 일이다. 시인의 시가 아릿하다.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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