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식
전 김포대 총동문회장
전 파독광부협회 회장
전 경기도의원

누구나 태어나면 정상적인 삶, 행복한 삶,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주어지지 않으면 누구는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누구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악조건을 물리치면서 세상 속에 굳건하게 서 있기 위해 몸부림친다.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으로 자신의 삶을 가장 아름답고 치열하게 가꾸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불태운다. 정여울 작가의 표현대로 삶이 내게 허락하는 제한된 지평선을 뛰어넘으라고, 여기에 안주하면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 내 영역에 만족하면 절대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계’를 꿈꾸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인간다운 삶을 향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그 어떤 꿈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의 얘기는 그래서 늘 감동적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파독 간호보조원 출신들이 만들어낸 성공 스토리다. 먼저 소개할 사람은 9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9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72년에 파독 간호보조원으로 병동에서 일하며 야간에는 공부에 매진, 75년 쾰른 대학에 입학해 교육학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91년 독일 전문가로 외무부에 특별 채용돼 공사로 재직하다 2005년부터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대사를 역임한 김영희씨 얘기다. 그녀는 2010년에 <20대, 세계무대에 너를 세워라 - 파독 간호보조원에서 외교관이 된 김영희의 인생항로 개척법>이란 저서를 통해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을 만큼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쾰른대학 시절에는 10년 동안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공부해야 했다. 입학 당시 독일어 실력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국내의 명문대학을 나와 학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무고시 출신이란 배경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외교관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사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 나아가 국제 외교무대에서 ‘똑똑하고 능력 있는 동양 여성 대사’로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이 뒷받침 된 노력‘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사람이 이룩한 특별한 성취이기에 김영희 전대사의 이야기는 더욱 값지다.

다음에 소개할 사람은 현재 독일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노은씨이다. 현재 그녀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파독 간호보조원 출신의 세계적 화가’라고 한다. 1970년 23살에 독일로 갔고 3년간 함부르크 항구 근처의 시립병원에서 뱃사람을 돌봤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병문안 하러온 간호장이 그녀의 침대 밑에 숨겨둔 스케치북을 발견해 전시회를 열어준 계기로 26살부터 인생대반전이 시작돼 세계적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스물세 살에 독일에 간호보조원으로 갔다가 유럽 미술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는데, 옛날이야기지만 혼돈의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여전히 극적인 반전 스토리 아니겠느냐, 파독광부와 간호사는 한국에서도 아픈 과거로 이야기 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소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괜한 오해는 하지 말라.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것처럼 광부와 간호사들이 다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 밤 근무를 하느라 힘이 들긴 했어도 다들 잘해줬다.”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인생고생 중에 어떤 부분이 가장 고통스러웠느냐는 질문에는 “여자 혼자 외국에서 뿌리내리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종일 걸어도 아무도 내게 말 걸지 않는 날이 많았다. 어린애 취급도 많이 받았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있는 땅이 어딘가?’ ‘다른 사람은 남자도 있고 돈도 있는데 나는 왜 하나도 가진 게 없나?’ 병원 일도 하기 싫어서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다. 더 무시 무시한건 자고 일어나도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것이다.”라고 힘들었던 어려운 시절의 일화를 밝혔다.

김영희 전대사는 나보다 1년 늦게 파독되었고, 조은 화가는 나보다 1년 빨리 파독되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내가 독일에서 광부생활 했던 지난날이 어제 일처럼 다가왔다. 마치 나의 파독광부생활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 시절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회원이기도 한 김영희 전대사나 노은 화가처럼 나도 그 당시에는 매일 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날씨처럼 그대로 받아들였던 생각이 났다. 뒤돌아보니 나의 파독광부 생활은 기쁨만큼의 고통도 있었고 희망만큼의 절망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두 번째 주인공은 '탄부일기‘라는 책의 주인공인 김정동씨이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그는 나보다 나이가 4살이 더 많았다. 그는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강원도 태백공고 졸업 전인 1956년 장성광업소 채탄보조공으로 입사해서 1993년 퇴직한 살아있는 광부다. 광산에서 갱내 작업을 하는 이들을 '광부'라 하는데 그중에도 석탄을 직접 캐는 작업을 하는 이들을 '탄부(炭夫)'라 한다. 광부 중에서도 특히 기피하는 일인데 37년 1만3506일을 '탄부'로 근무하고 55세 정년으로 살아온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독일에서 3년간 탄부로 일한 나로서는 그가 살아온 삶의 역정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책은 '일기'라고 했지만 날짜별로 기록한 건 아니고 시간 순서대로 되짚은 일종의 '회고록'이었다. 책에는 갱내 사고 순간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는 막장이 무너지는 '붕락 사고'는 물론이고, 가스에 중독됐다가 구조되는 일이 있을 정도로 힘든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옛일을 자랑스럽게 추억하고 있었다. 기능공 시절에 붕락 사고를 막는 시공을 하고, 작업반장 때 하층탄을 개발해 정상 채탄으로 성공시켰으며, 막장에 개인 도구 보관함을 설치해 불편을 해소했고, 생산량을 높여 3교대 근무 형태를 2교대로 바꿀 수 있게 했다는 얘기는 그가 얼마나 탄부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그가 꿈꾸는 세상을 살기 위해 몸부림쳐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나의 파독광부 시절에도 막장에서 많은 사고가 발생했었다. 뒤돌아 생각하니 그렇게 삶과 죽음을 맞닥뜨리는 사고 순간을 숱하게 접했으면서도 파독광부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정착하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기적으로 지금 이 순간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다.

나는 지난 4월에 <첫 마음을 지켜주는 나만의 인생보감>을 통해 맹자가 한 말을 소개한바 있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이 사람에게 내리려 하실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들의 살과 뼈를 지치게 만들며, 그들의 배를 굶주리게 한다. 그들의 생활을 곤궁하게 해서 행하는 일이 뜻과 같지 않게 만든다. 그들의 마음을 분발케 하고 성질나는 것을 참게 하여 자기가 해내지 못하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오늘 소개한 세 주인공 중 두 사람은 어린 여성의 몸으로 독일에 파견되었고, 또 한사람은 37년간을 탄부로 살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앞날을 가로막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은 그러한 여건을 본인들의 성공의 디딤돌로 삼았다. 그들 가슴 속에 담겨있는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을 생의 열정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의 세상을 뜨겁게 사랑한 것이다. 파독광부생활을 했던 지난날의 나의 청춘이 세 사람의 인생을 통해 더욱 값지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처럼 세상을 뜨겁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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