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선생이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말했다.

“우리가 살던 아니 풍문 자네가 살던 시절에서 백이십팔, 아니 백이십구면 전이네. 임금이 자리에 오른 지 팔 년째 임오년이지.”

천하의 기인 토정 선생도 헷갈리나 봅니다. 또 손가락으로 꼽더니 잠시 생각했습니다.

“작년에 양성지 영감은 교서관 제조를 했지. 책을 만드는 곳의 우두머리란 말이야.”

“선생님. 양성지 그분은 대감이 아니었던가요?”

“지금 아니야. 내후년 가을에 이조판서에 오르지. 그때부터 대감이라고 부르는 거야.”

토정선생 말씀에 의하면 이조판서면 정2품입니다. 그 이상을 대감이라고 부르고 정3품 당상관부터는 영감이라고 부른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옥리들이 대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위를 높여 우대해서 부르는 것이지요. 토정 선생님이 저와 양동이를 번갈아 보고 말합니다.

“내일모레면 옥에서 나갈 수가 있네. 두 사람 관상에 씌어 있어.”

반가운 말이지만 나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합니다. 보아하니 이곳 세상에서는 재담꾼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내가 생계를 이을 직업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양동이라도 힘이 되어야 하는데 옛날 기억이 사라진다 하니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울합니다. 이때 밖이 소란했습니다. 토정선생이 양동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이보게. 양 서방. 자네 고조할아버지가 오시고 있네.”

“고, 고조할아버지? 양성지 대감 아니 영감이 오신다는 말입니까?”

눈을 비비며 일어난 양동이가 양성지라는 말에 몸이 굳었습니다. 과거로 돌아와서 고조할아버지를 뵙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감옥 앞에 중년의 벼슬아치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누, 누, 누가. 내 후, 후, 손이라고 해, 했나?”

눌재라는 호(號)답게 몹시도 말을 더듬었습니다. 양동이가 큰절을 올리며 대답합니다.

“고조할아버지. 불초한 양동이 인사 올립니다.”

그 말에 양성지는 깜짝 놀랍니다. 아무리 봐도 자기 연배인 남자가 고조할아버지라고 하니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잠시 양동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말합니다.

“꾸, 꾸, 꿈에, 서, 보, 본.”

“예. 맞습니다. 꿈에서 늘 저를 타이르시고 꾸짖으셨지요.”

양성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옥리에게 말했습니다.

“마, 맞, 맞네. 내 손자니 푸, 풀어 주게.”

누구의 명령입니까. 옥리는 옥문을 열어 일행을 나오게 했습니다. 양성지 영감은 자신과 함께 온 청지기에게 집으로 데려올 것을 명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급히 갑니다. 청지기가 우리 세 사람을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말했습니다.

“내 이름은 지성안이요. 작년부터 대감 밑에서 일하고 있소. 당신들은 어디서 온 뉘기요?”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이 양성지의 후손이라는 것이 미덥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자 토정 선생이 앞으로 나아가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우리는 백 년도 넘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오. 길에서 이러지 말고 우선 집으로 갑시다. 믿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사기꾼이 아니오.”

지성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통진 관아에서 한참 떨어진 대포(大浦)까지 갔습니다. 대포에는 그의 별장이 있습니다. 바닷가에는 목안정(木雁亭)이라는 화려하고 웅장한 정자도 지었습니다. 우리는 우선 지성안의 안내로 별장의 별채로 안내되었습니다. 목안정 모임이 있을 때 손님들이 머무는 거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오랜만에 성찬을 먹게 되었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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