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진창윤

 

고개 들면 언제나 머리 위에 펼쳐지는 맑은 허공에

바람이 매 순간 다른 필체로 그은 푸른 내력이

내겐 없다

 

일주일에 한 번은 구름의 눈물을 받아먹어야 시간은 노래를 멈추지 않으리

그 목마름으로 더욱 간절히 머나먼 길을 떠나가리

 

장마가 시작되면 물줄기 따라 퍼지는 리듬

마른날 푸른 잎 창가에 날개를 펼친다

햇살의 각도를 따라 침이 마른다

 

계절이여, 모든 것을 잊고 화사하게 뿌리내리고 싶다

이주해온 열대의 숨소리가 저 깊은 영혼으로 발목을 붙잡는다

 

삶이란, 먼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이방의 거친 바람 냄새를 아무 일도 아닌

듯 한입으로 마시며 돌아누워야 하는 것

 

혼자서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하루

영영 이 세상으로부터 잊혀지는

하루가 있다

 

[프로필]

진창윤 : 전북 군산, 우석대 대학원 문창과, 2017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감상]

하루의 절반이 낮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밤이다. 하루가 온통 어둠이라면 낯은 늘 그리움의 대상일 것이다. 창가에 앉아 햇빛과 바람을 기다리는 화분 하나 있다. 빛을 향해 잎을 내밀고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다. 생존이다. 생명이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반복하는 일이다. 세상으로부터 잊히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빛과 바람과 같은 ‘그대’를 곁에 두는 일, 그가 내 곁에 늘 있는 일이다. 일상처럼.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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