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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중봉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 부음(訃音)

<우수상>

 

부음(訃音)

박 시 윤

 

이 겨울, 문 안으로 들지 못한 것들은 한데서 얼었다. 차가운 것에 등을 돌릴 때, 급히 안으로 몸을 들이밀며 식어가던 시간을 추스르던 저녁. 나는 어떤 이들의 고통도 아무렇지 않게 잊었다. 잊었다, 잊었다. 잊어버릴 때까지 눈은 계속 내리고, 눈 쌓인 들은 평온한 잠 속에서 침묵했다.

먼 산자락, 아주 먼 마을에서 부고가 전해졌다. 늦가을까지만 해도 숨을 헐떡이며 올해는 넘길 수 있을 거라 안도하던 그가 올해를 넘기지 못했다. 꽉 채운 일흔 하나, 환갑·진갑 넘겼으니 살 만큼 살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던 그였다. 일구던 텃밭에 푸성귀 파릇파릇 돋고, 나비 훠얼 훨 날고, 어린 손주들 앵두나무에 매달려 왁자하게 웃을 때, 봄날의 나른한 잠은 유난히도 깊었다. 나이 들어 그렇다고 그러려니 했다. 꼬장꼬장하던 몸에 병이 들고 도심의 어느 병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 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떠나갔다. 계절 계절마다 두께를 달리하던 옷가지들이 무의미 해 질 무렵,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텃밭으로 나가 흙을 매만졌다. 스스로 더뎌진 걸음을 알았을 때, 숨이 가빠짐을 알았을 때, 안주인과 장남에게 조금씩 당부하던 것들은 한여름 땡볕처럼 매서웠다.

섣달그믐, 오래된 집 문틈으로 찬바람 매섭게 들었다. 쿨럭이는 기침이 매일 밤 깊어지고, 작은 집 안조차도 마음대로 걸을 수 없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한 광주리 약이 놓이고, 매시간 때를 맞추어 한 움큼씩 약을 목구멍으로 삼켜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상이 이어졌다. 간간이 찾아오는 이웃에게 스스로 몸뚱어리를 일으켜 예를 갖추는 것도 힘에 겨웠다. 가까스로 기대앉던 벽은 때가 절었다. 불투명한 생을 천천히 뺏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의지하던 벽엔 죽음이 긴 뿌리를 키우고 있듯 어두워졌다.

오고 가는 몇 마디 말에 죽음을 걱정하는 그림자가 낮게 깔려 있다는 것을, 눈치 빠른 그는 알아챘을 것이다. 모여드는 시선에 이별의 언어가 그득하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달력에 표시해둔 진료일 외에 그의 외출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했다. 호전되었다는 주치의의 이야기와 자신이 느끼는 몸의 느낌이 상반된다는 걸 눈치 챘을까. 따라나선 자식들의 침묵을 읽느라 그도 침묵했다. 바깥 걸음에 먼지가 쌓이면서 그의 귀는 더욱 푸르러 졌다. 바람 소리에 계절을 읽고, 낮과 밤을 읽고, 발자욱 소리에 피붙이와 행인을 구분했다. 빛이 가난한 방, 다녀가는 자식들의 언어를 주워 담는 그의 귀엔 한 움큼 기다림의 웅덩이가 졌다.

죽음은 기척 없이 들어와 잔금처럼 하루를 풀어헤쳤다. 밤은 여전히 연하고 평온했으나 생을 건너가는 자에게는 길고 먼 고통의 시간이었다. 마르고 가늘어져야만 평온히 신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다 믿었을까. 한가득 쌓인 약이 때를 자주 걸렀다는 것과 매끼 섭취량이 줄었다는 것과 체중이 몰라보게 축났다는 것과, 무엇보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는 것에서 사람들은 그의 부고가 곧 전해지리라 예상했다.

그의 부고에 나는 담담하려 애썼다. 가슴 언저리가 저릿하게 아파 왔다는 것과 간간이 숨이 막혔다는 것과 누군가의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는 것과 누가 건들면 봇물처럼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는 게 전부다. 냉정하게 할 일을 마치고 그에게로 가는 길엔 손이 떨려 운전이 되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으나 춥지 않았다. 마치 예고라도 된 것처럼, 떠날 사람 제 갈 길 간 것처럼, 이 모든 게 예상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부고는 그러했다.

계절을 옮기는 바람은 깨끗했다. 변두리로 돌던 매서운 바람에도 양지바른 곳엔 냉이가 돋고 꽃이 피었다. 부고를 접한 지인의 전화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타인은 나보다 먼저 울었고, 나보다 더 크게 오열했다. 타인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체감할 수 있는 슬픔, 그제야 그의 부음에 눈물이 났다. 이것이 어떤 슬픔인지도 모를, 오장육부를 휘돌아 나온 깊은 통증이 스민 그런 슬픔, 내쉬는 숨보다 들이마시는 숨이 더 절실한 고통, 평생 단 한 번도 이런 눈물 흘려본 적 없는, 아픔과 미안함이 스민 아주 길고 먼 슬픔이었다.

그의 시신이 잠들어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내 걸음이 얼마나 멀었는지를 깨닫는다. 마음만 먹으면 지척인 거리에서 그와 내 거리는 다다를 수 없을 만큼 멀었다. 내 일상들은 부지런히 잘 자랐고, 밤길은 혼자 스스로 밝았다. 내가 제 몸의 한기를 벗어던질 때, 천하에 혼자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생각했다. 나는 안다, 내 몸 구석구석에 그의 억양과 그의 그늘과 그의 아침과 저녁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의 어떤 슬픔과 고통이 나의 밤에 이르고, 낯익은 억양들이 나도 모르게 뚝뚝 떨어져 내릴 때, 나는 어떤 계절에서 도망치듯 떠나온 그였다는 것을.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그가 내 삶에 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나는 알고 있었다.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 그와 조우한다. 흰 덮개를 들추자 가지런히 누워있는 그의 왜소한 육신이 보인다. 방외자처럼 외롭고 쓸쓸한 체구에서 온몸을 훑고 지나간 병도 잠들었다. 속은 병들어도 거죽은 말끔한 그의 모습에서 부단한 고투가 느껴진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묻고 싶었으나 질문은 이미 늦었고, 그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차마 묻지 못했다.

틀니를 끼지 않은 볼이 우묵하니 패였다. 새하얀 머리카락 사이 사이로 새로 돋아나던 검은 머리카락은 보기에도 보드랍다. 실로 오랜만에 그의 얼굴이 평온해 보인다. 허락 없이 그의 얼굴에 손을 올린다. 차갑다. 맨살을 두 손으로 번갈아 만져도 얼음장 같다. 따뜻하던 몸 기운 다 어디로 가고 아무리 번갈아 부벼 보아도 시리기만 하다. 두 손 가득히 들어오는 이 작은 얼굴, 언제 다시 이렇게 만져볼 수 있을까. 아무리 볼 부벼도 내 체온이 그에게 다가가지 못해 더는 따뜻하지 않다. 주글주글 주름마다 내 눈물 떨어져도 가뭇가뭇 핀 검버섯 더는 웃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던 눈은 감겼고, 나를 불러주던 입술은 대답이 없다.

스스럼없이 물든 죽음, 이토록 일찍 그를 거두어갈 줄 몰랐다. 제아무리 계절을 키우고 옮기는 바람이라 한들, 서러운 날 이토록 일찍 데려올 줄 몰랐다. 밤이 시작되고 영정사진 주위로 스스럼없이 만개한 꽃들이 밤을 밝힌다. 잊지 못할 추억들은 죽지 않아 주변을 떠돈다. 연하고 무른 그의 사진을 보며 태초에 내게 살 냄새를 준, 끈적한 혈족이었음을 깨닫는다. 한때는 그의 휘파람 소리와 천 개의 종이학 이야기가 내 유년을 구름 높이로 웃자라게 했다. 예민하고 진화하지 못한 내 감정과 생각들이 그를 멀리했을 뿐, 굽이굽이 서리던 그의 노을이 좋았다. 깜깜하고 적막한 밤이어야만 잠드는 습관도, 혼자 어두워지는 시간을 즐기는 것도, 습하게 잦아드는 눈을 부여잡고 밤을 지새우며 뭔가에 몰두하는 버릇도 그와 같았다. 내 천성의 긴 뿌리를 키운 만큼, 이제 그의 기척은 없어도 함께했던 시간은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바람도 어둠도 들지 않는 장례식장, 저녁은 천천히 노를 저어 자정으로 흐르고, 자정은 또 천천히 노를 저어 새벽으로 향한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와도 이제 그는 더이상 오지 않는다. 육신은 버렸으나 아직 이승의 사람, 마지막 그의 길을 애도하고자 3일 낮 밤 조문객이 들고 났다. 서리서리 인연도 참 많다. 그의 맺음새가 이토록 북적일 줄 몰랐다. 이제 그가 없어도 바람은 또 다른 계절을 데려올 것이고, 익숙한 계절들이 눈시울 언저리에서 아프게 돋아날 것이라는 걸 안다. 그가 기거했던 빈방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 많은 밤을 울게 하겠지.

수의를 입은 그가 질긴 음성으로 내 귀를 두드린다. 입이 없는 천상의 말들이 심장을 조여 맬 때, 슬픔은 비로소 입 밖으로 던져진다. 영원의 세계로 훠얼 훨 날아간 그에게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하는 조문객들. 그가 채 끌어가지 못한 쓸쓸함이 한겨울 들판에 널브러져 있다. 스스럼없이 물든 조화 꽃잎 흩뿌리며, 낙동강이 훤히 내다보이는 장지에서 돌아오는 내 뒤축엔 그가 남겨놓은 걸음이 놓였다.

창밖의 불빛이 방안으로 스며들어 밤은 더 적막하다. 그는 지금 어디쯤 가고 계실까. 창을 두드리는 바람 더는 들어 오지 못하고 밖을 서성댄다. 방 한가운데 아무도 눕지 않은 예쁜 요대기가 깔리고, 눈물이 방울째 뚝뚝 떨어져 번진다. 손만 뻗으면 닿았던 약 광주리는 없고, 오래된 사진첩 한 권이 가지런히 놓였다. 이제 그가 사용하던 것은 모두 유품이 되었고, 내 몸속에 쌓인 그의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그의 기척이 없는 방안엔 죽지 못하는 기억들이 남아 아슴아슴 하루를 푼다.

이제 그와 눈매가 똑 닮은 내가 벽에 기대앉아 아버지를 읽는다.

 

 

 

<당선 소감>

그늘의 족적

어둡거나 춥거나 당신은 날카로웠다. 눈매가 그러했으며 삶 또한 그러했다. 나는 당신이 한없이 멀었다. 살갑게 다가올 리 없는 당신이 아니라 외면하는 내가 더 멀었다는 것을, 지난해 마지막 달 그믐에서야 알았다.

당신의 병病이 부담스러웠던 건, 이미 나는 병을 건너왔다는 것. 다시 내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늘 불사조같이 강했던 당신이 이렇게 쉽게 생을 마감할 줄 몰랐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부음을 나는 종종 잊는다. ‘아버지’ 휴대전화에 저장된 버튼을 누른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당신이 떠나고, 새해가 밝고, 계절이 오고 간다. 나무가 바닥에 그늘을 깔 때, 나는 그늘아래 서 있을 자신이 없다. 내 하루가 문득문득 당신이다. 애써 그늘을 밟지 않으려 하나, 내 삶엔 당신이 무성하다.

해가 기울고, 노을이 붉어질 때면 미망인은 잘 계신지 안부가 궁금하다. 적막하여 TV 볼륨을 애써 키워, 집을 요란하게 한다는 미망인의 씩씩한 말에도 당신의 그늘이 산다.

당신이 없는데도 당신의 족적이 자란다. 나는 족적을 살펴 적으며 내 갈 길을 간다. 고독을 유산으로 물려준 당신에게 이 상을 바친다.

슬픔을 억누르며 쓴 부족한 걸음을 끝까지 눈여겨봐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박윤진 기자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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