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도리뱅뱅이

김영욱

 

진눈개비 흩날리는 저녁                   

불판 위로 쓰러지고 엎어지는 피라미들

낮에 본 솥바위 나루터의 의병(義兵)이었다

 

어중이떠중이는 입만 열면

가뭄에 두고 온 처자식 걱정이라지만

제 이름은 쓸 줄 몰라도 하늘의 때를 읽고

농기를 앞장세워 돌격한 맨몸뚱이들

 

골내미 백정 따라 버드내 물길 건너온

대둔산자락 어느 고을 노비라던 천 서방도

땡볕 아래 뜨거운 맹세로 울었겠다

 

등뼈 오그라든 이름 모를 물고기들도

마지막 곱사춤을 추고 있는데

어느새 눈발은 굵고

혀는 벌써 꼬부라져 흰소리만 쏟아내는데

 

스스로는 쓴 적 없어도 부끄럼이 없는 이름들

불구덩이로 제 몸 던진 순절(殉節)이라지만

한 주검을 덮는 다른 주검은 두려웠겠다

 

하늘에는 만장도 상여도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백의(白衣)의 장렬(葬列)

 

연탄불로 조등을 밝힌 포장마차

펄럭이는 휘장 아래 둘러앉은 넥타이 부대

꾸벅, 묵념하는 얼굴들이 벌겋게 취해있겠다

 

 

<당선 소감>

시종일관하는 전심

어른이 없는 세상이란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스승이 없는 세상이란 생각도 가끔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번 죽음이 있을 뿐,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며 7백 명의 의병과 함께 한 날 같은 전장에서 최후를 맞이한 중봉 조헌 선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께서 우리 역사에 계셔준 것이 제게는 커다란 위안입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봅니다. 명성이 큰 사람들의 그림자를 봅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실망만 커집니다. 천근만근 무겁고 중하다는 그들의 말은 이내 그 속내와 다르다는 것이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그들이 외치는 대의와 그들의 사적인 삶은 별개입니다. 귀를 막습니다. 사람을 다시 생각합니다. ‘전심(全心)’만이 진심(眞心)이고 전심(傳心)입니다. ‘전심(全心)’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전심은 결코 요란하지 않습니다. ‘전심’은 초심(初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중심(中心)을 잃지 않았던 중봉의 중심(重心)이었습니다. 그의 충심도 그러했습니다. 하여 ‘도끼’같은 직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의 초상화를 봅니다. 눈빛이 그윽합니다. 그의 삶도 그러했을 겁니다. 눈을 감습니다. 욕심이 앞섰던 제가 보입니다. 저는 그의 뜻을 받아 적고 싶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제 시에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아둔함은 살피지도 않은 채, 중봉조헌문학상에 몇 차례 응모하고 번번이 수상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 분께 닿기 위해 제 전심(全心)을 다했다고 보기엔 제 삶과 시에 쏟은 정성이 부족하단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깨어났습니다. 위내시경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연락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품을 큰마음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진정한 어른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실 기회를 마련해주신 <중봉조헌선생선양회>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시 로 그 분을 모시기엔 여전히 부족하지만, 계속 정진하여 중심에 닿으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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