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載鴻 전 경기도지사

▲ ◇고향 김포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심재홍 전 경기도지사.
전북지사, 인천시장, 대통령 정무비서관 등 거친 행정통

대통령 정부비서관 등 정부 주요부서와 전라북도지사, 인천광역시장, 경기도지사등 요직을 두루거친 심재홍 전 지사에게 있어 김포는 매우 각별하다. 대곶 약산이 고향이기도 하지만 1950년 18세의 나이로 김포에서 6·25를 겪었기 때문이다.
심 전 지사의 각별한 애정은 경기도지사 당시 추진한 제방도로, 시민회관, 김포 전지역 마을안길 포장등 김포발전의 토대를 구축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심 전 지사는 92년 경기도지사 근무당시 “서울과 인접한 김포가 타 지역에 비해 낙후된 것과 관련 발전방향 등에 대해 부심했다”고 회고했다.


6·25전쟁, 생과 사의 갈림길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 인민군의 한강 이남 점령과 동시에 의용군 모집, 강제 징용당할 뻔한 것을 심재홍 전 지사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당시 심 전 경기도 지사는 집안 우물에 숨었고 할머니가 낙옆등으로 가려 인민군이 없는 틈을 타 강화뱃길을 따라 인근 섬에 도착했다. 이후 무인도에서 우연히 지나던 해군 경비정에 의해 구조된 뒤 인천으로 건너가 인천상륙작전과 9·28 수복을 직접 보고 겪었다.
심 전지사는 수복후 집에서 인민군에 의해 피랍도중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선친과의 재상봉의 기쁨도 얻게된다.
생사의 기로에서의 극적인 생존이 작금의 심 전지사를 있게 했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선친의 뜻에 따라 의학도의 길을 걷고자 했던 심지사는 6·25 동란을 맞아 그 꿈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심 전지사는 18세가 되던해 육군 사병으로 군에 입대, 21세가 되던해 광주에 육군보병학교간부후보생으로 입교, 육군 중위로 예편했다.
신중하고 과묵한 심 전지사는 전체 후보생 중에 1등으로 소위에 임관하는등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듯했지만 이는 심 전 지사와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사 꿈 접고 공직의 길로

9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자유당 말기시절 중위로 예편한 심 전지사는 의사대신 공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심 전지사는 처음 시흥군수로 부임한 1966년 10월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시흥군수자리는 심 전지사에게 있어 2번째 전환점을 맞는 계기를 마련, 시흥의 목민관이라는 생각에 이때부터 심 전지사는 현 근무지를 제2 고향으로 생각하고 전력투구하기 시작했다.
주민본위행정, 청렴, 공평무사, 중립 등 공무원이 지녀야할 4대 덕목을 말한 심 전지사는 당시 시흥을 떠나 의정부시장으로 부임할 당시 역대 군수중 최고의 환송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심 전지사의 행정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것은 당시 극심하게 낙후된 전라북도를 발전시키기위해 농공병진정책을 수립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전주권 개발사업 등으로 전라북도 발전의 틀을 마련하게 된다.

첫 시흥군수시절 잊지 못해

당시 덴마크 수상이 전라북도를 방문, 유가공공장 건설 등을 협의했을 정도로 심 전 지사는 전라북도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현 이리주택단지, 남원관광단지, 공업단지, 상수도 보급률 증대 등이 심 전지사의 작품이다.
89년 인천시장 재직 당시 이미 송도개발에 착수했으며 인천지하철 기공, 영종도 인천공항 기공을 주도하기도 했다.
92년 경기도지사 재직 당시에는 경기도는 한수 이남 이북의 개발제한으로 지역정서가 매우 불안한 시기였다. 심 전지사는 이를 규합하기 위해 도덕성, 근면성, 준법성등 5대밝은 정신회복운동을 폈으며 당시 이를 노태우 대통령이 전국에 보급할 것을 지시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당시 심지사는 수도권정비계획법, 개발제한구역 등 경기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각종 제한으로 인한 한수 이남 이북의 피해의식 등 정서완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당시 30년의 공직 노하우로 경기도백자리를 맡은 심지사는 문민정부 조각으로 1년간의 경기지사 활동을 펼쳤지만 그 기간 동안의 업적에 대해 당시 관계자들은 정권교체기에도 불구 “깔끔한 도정이었다”고 평가했다.

고향발전에 미력한 힘 보태

「덕불고 필유린, 적덕지가 필유여경」이 삶의 원칙이라는 심 전지사는 정년퇴직 이후 정계에서 정치입문에 대한 유혹이 많았지만 “깨끗, 공손, 부지런함, 알뜰, 다정을 강요하시는 교사이신 선친이 정치를 혐오했기 때문에 입문할 수 없었다”면서 “공직에 종사한 것 자체가 반은 부모님의 가르침을 어긴 것인데 나머지 반마저 어길 수야 있겠느냐”며 고사했다고 말했다.
심 전지사는 이후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장과 경기도지방행정 동우회장직을 맡아 봉사활동에 힘썼으며 현재 경기도민회 부회장과 적십자사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 전지사는 경기도 기획실장 재직당시 대북요지인 서해 5도 개발단장역을 충실히 이행, 홍조근정훈장을, 중위 임관당시 군전력확보와 전력 서포팅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약 력
▲ 33. 4. 27일 대곶면 약암리44서 출생
▲ 보성고, 건국대 법대 졸업
▲ 경기도 시흥군수
▲ 경기도 의정부시장
▲ 충청남도 대전시장
▲ 제주도 부지사
▲ 충청남도 부지사
▲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 전라북도 지사
▲ 인천광역시장
▲ 경기도지사
▲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 황조·황조근정훈장
▲ 처 황옥희 여사와의 사이 1남4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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