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매희 
예술하우스 대표

문화예술인들은 일용직근로자로 분류되고 있다.

일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가치에 대한 산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공연비에 대한 기준 역시 불분명한 상태다. 때문에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대부분 4대 보험 가입도 어렵고 이에 따른 다양한 복지해택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른 청년들이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활동을 하고 연차를 쌓아 나갈 때, 문화예술인들은 경제활동은 고사하고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예로부터 문화예술은 궁중과 귀족들, 양반들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 왔다. 지금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후원 없이 자립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며, 이것은 문화예술이 지닌 기본적인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가와 관련된 부분, 감성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생각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문화예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지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이 시대 안에 버티기 어려운 이유는, 가지고 있는 특성자체가 다른데 환경이나 처우는 다른 것들과 동일한 조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임대료를 생각해봐도 그러하다. 임대료는 직종에 상관없이 동일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문화예술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서 일반 임대료를 감당하기에는 타산이 맞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개인화와 기계화속에 점점 더 삭막해져가는 현대의 사회는 공동체의 개념을 중시하고 있고, 공동체를 결집시키는 일에 문화예술을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고 있다.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와 방안을 마련되어야 한다.

이에 몇 가지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단계에 따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문화예술도 경제성장과 동일하다. 신생단체가 있고, 중간단체가 있고, 이미 궤도에 올라 인정받는 단체들이 있다.

신생단체에게는 진입장벽을 낮추고 경험 할 수 있는 열린 제도를 마련해줘야 한다.

사회초년생들에게는 시작이 반이다.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닌 가능성에 대해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미 궤도에 오른 단체도 그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중간에 낀 영세단체들에 대한 지원제도도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지역단위의 문화재단에 선정된 단체들을 보면 이미 자리매김한 유명단체들이 높은 비율로 선발된다. 귀중한 시민의 혈세인 예산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이름 모를_ 성장의 가능성이 있는 단체들에게 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둘째, 공정한 심사기준의 수립이 필요하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라는 용어가 존재할 정도로 문화예술계는 인맥에 따라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 이것은 사회 곳곳에서 어쩔 수 없이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기회가 제공 될 수 있는 공정한 심사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정책기준에 포함되어야 한다.

모든 지원금들이 선발에만 엄격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항목 자체가 없다.

이러한 제도적 문제 때문에 콘텐츠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 명분만 있는 문화예술, 행사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체 혹은 개인이 지원금을 얼마나 실리 있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문화예술 전체가 질적으로 발전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지금의 제도와는 다른 측면에서 공정한 가치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리와 명분만 있는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기회를 얻게 되고, 지속적으로 쌓이게 된 실적들은 또 다른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이다.

명분만 있는 연혁이 쌓인 대규모의 단체와 실적은 부족하지만 성장가능성이 있는 신생 단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선발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앞의 단체가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기준이 정책에 반영될 경우를 생각해보면, 기존의 선발기준과는 다른 측면에서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는 ‘공정한 기회’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넷째, 전문예술인과 생활예술인에 대해 구분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전문예술인과 생활예술인은 문화예술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구분될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예술은 관찰자적 입장에서 참여자적 입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만큼 생활예술인 영역이 더욱 활성화되고 이에 대한 지원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지만, 먹고사는 1차적인 것들을 생각 해 보았을 때 전문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더 시급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 자체에 대한 것보다 전략이 좋고 회원들을 잘 모은 단체들이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지원에 대한 구분을 세울 수 있다면 보다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논의했던 바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모두를 위한 ‘공정한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 본다면 보다 다른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예술에만 집중하며 살 수 있는 한국사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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