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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날에 생각하는 신문의 활로
박태운 발행인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민주사회를 지키는 역군 역할을 해낸 신문의 위상이 뉴스가 공짜인 시대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무책임한 개인 뉴스메이커들이 난립하며 선동과 가짜로 세상을 호도하고 있다. 그래도 오로지 정통 신문만이 정도를 지켜내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현실에서 공짜인 뉴스를 대체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유럽·미국·일본처럼 정부가 지원하는 방법이 있고, 공연관람 비용처럼 신문구독료도 개인소득공제에 포함하는 방법과 또 하나는 뜻있는 개인들의 후원이다. 무엇이든 선택되어야 신문이 숨 쉬고 살 수 있다.

독립신문 창간일을 시작으로 신문의 날이 제정되어 지난 3월 7일 기념식을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신문은 우리 사회의 거울로서 국민과 국가의 힘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무거운 중책이 있고 국민과 국가를 평가하는 척도라는 위상이 있는 만큼, 신문의 역할에 맞게 사명과 책임, 공정성과 정의, 양심과 진심이라는 책무를 잘 수행하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의 경우도 소위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에 한 번 꼴로 가짜뉴스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와 가짜뉴스를 맹비난한다. 멀리 미국의 이야기를 굳이 들먹일 이유는 없지만, 언론탄생 이후 비판과 견제받아야 할 대상자들은 비판·비난에는 지극히 저항적으로 민감하고, 칭찬과 우호적 표시에는 조용하고 잠잠하다.

특히 정치인과 공무원, 각급 기관단체의 장들은 언론의 보도에 주시도가 높고 따라서 비호감이 높은 보도내용에 따라 당사자나 기관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언론 존재 이유와 기능은 한 몸통이라 할 수 있어 국가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기능과 국민과 시민사회가 필히 공유하거나 알아야 할 것들을 편견과 왜곡 없이 사실을 알게 해 주는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이다. 시민이 사회의 주인이고 주체인 것처럼 국민이 주인이고 국가의 주체라면, 국민은 당연히 정당한 진실과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

특히 어느 정치인이 어떻게 잘하고 잘못하는 정치를 하는지, 어떤 기관이 각기의 기능에 맞는 일들을 얼마나 국민 눈높이에 맞추어 효율적으로 수행하는지,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사고들을 얼마나 신속하게, 자세하게,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하는지, 다방면의 보도 검증과 반성은 진실한지, 이러한 부분들을 살펴보고 점검하는 일들은 언론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아무리 객관적 보도를 하더라도 공정성이 결여되면 신문은 한낱 찌라시가 되는 것처럼 언론의 진실한 자세는 스스로의 자존심을 초월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마주치는 진실들은 숨어버리거나 폐기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든다면 거물대리 농경지가 인근 공장의 환경적 문제 발생에 의한 피해로 농경지가 오염되고 오염된 토지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사실상 일부 오염을 인정하게 된다면, 누군가의 침소봉대로 거물대리 농경지 몇 천 평이 아니라 김포농경지 전체가 오염되었고 오염된 김포 농지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전부 오염되었다고 과잉 왜곡되어 판매가 끊어진다면, 많은 억울한 김포 농민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니 생산자·소비자 모두가 손해를 입게 된다. 결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더 크게는 국가적 이익이 걸린 문제에 대한 보도 여부의 판단에 일본의 언론들은 지극히 국가 편에 서기도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 태평양에 방사능 오염수를 쏟아 부은 것은 세계인의 삶의 공유지인 태평양을 오염시키는 것이란 걸 다 알지만 국제사회에 사과도 없이 슬그머니 넘어감으로 일본이 국제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서 반세계적 세계 환경에 저해되는 몰상식한 국가행위를 하였으나 일본 언론들은 자국의 비열한 행위를 눈감았다. 전쟁터를 누비며 총알과 포탄의 생생한 생명위협을 무릅쓰는 목숨 건 종군기자들을 생각하면 “생각 많은 비겁자”일 수도 있겠지만 매체와 소비자 간의 합의나 충돌은 항상 존재한다.

어쨌든 신문이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고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다. 지금은 신문에서 방송으로 다양화된 언론이 2007년 이후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SNS와 1인 미디어 시대가 활짝 열렸고 유튜브를 통한 1인 방송도 넘쳐나고 있다. 이제는 언론의 속보성은 개인에게 추월당했고 사건사고의 보이지 않은 이면성 포착 능력도 더 많은 실질적 전문가들에게 뉴스해석의 실력도 떨어져 있다. 기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에 근접해있고 전문성이 강한 실력자들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신문과 방송 등의 언론들이 개인들의 뉴스생산의 속보와 전문성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에 더해 IoT에 의한 디지털 기술들이 인간의 의사결정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한 결정과 통제로 4세대 콘텐츠 형식이라 불리는 VR(가상현실)이나 MR(혼합현실)이 미디어 콘텐츠를 장악하게 되면 인간의 저널리즘은 해체되고 소멸될 날도 10년이나 20년쯤으로 다가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위치에서는 저널리즘과 디지털 기술을 접합하는 단계이기에 저널리즘과 언론이 어떻게 더 지속가능성을 유지해내는가의 과제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언론이 인간에서 인공지능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의 신문의 위치는 더욱 어렵다. 지금 당장 신문이 없어지면 책임 있는 뉴스도 없어지고 가짜인지 진짜인지도 모르는 개인뉴스가 넘쳐날 것은 자명하다.

신문 없는 세상은 선동과 사기의 도박장이 될 것이고 정당한 권력의 비판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저널리즘을 상기하면서 넘쳐나는 가짜뉴스를 접하게 되는 치욕도 감수해야 한다. 흔들리는 신문의 위상을 잡아줄 대책이 시급함을 전 사회가 공감할 필요가 있다. 유럽·미국·일본처럼 언론보호를 위한 정부지원을 적극 검토하고, 우선은 신문구독료를 개인소득공제에서 적극 검토하는 법안을 국회가 통과시키는 것도 한 방편이다. 신문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향후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큰 버팀목 역할을 하는 기능은 여일하게 지켜져야 국가와 사회가 안전하게 발전한다.

박태운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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