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

 

박이정

 

이름 호명된 살구들이 새벽 노동시장으로 발걸음을 굴린다

 

야생 살구 한 알

멸종위기의 눈알 굴리며 나살구 너살구 편도선이 붓는다

시간 맞춰 들어간

새벽 일터

선잠 깬 목청을 찢으며

망치를 두드린다

 

쪼갤 듯 부숴버릴 듯 또 한 번 천둥이 다녀간 뒤

어떤 살구는 번개가 뻗어나간 쪽으로 굴러가고 있다

 

우르릉 쾅쾅 살구가 쏟아진다

 

먹구름 손끝에 목덜미를 잡힌 늙은 살구나무

고부라진 무릎 아래를 못 떠나는 살구를

허공에 내던진다

 

현 위치를 가늠 못 한 채

이름 불려지길 기다리다

잠깐 나타난 빛을 따라 굴러가는 살구

차바퀴에 으스러지는 살구

눈알 굴리며 쓰레기 더미에 처박히는 살구

살구죽구죽구살구 비에 젖고 있다

 

[프로필]

박이정 : 2006 다층 등단, 시향, 다층 동인

[시 감상]

사월이면 살구나무에서 살구가 매달린다. 온 동네 지천으로 달큼한 살구 향기. 하늘에서 후드득 살구가 떨어지면 입에 쏙 넣어본다. 달고 시다. 삶이 그렇다. 본문의 말처럼 살구죽구죽구살구가 되풀이 되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우내 죽어있던 나무에서 살구가 달린다. 삶은 그렇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나 살구 너 살구.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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