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동국대교수

그들.

성리학자이며, 양반이고, 고급관료이면서, 토지를 장악한 지주들 그리고 ‘詩 書 畵’라는 문화권력 마저 독점해온 무소불위의 존재들.

 

그들은 정치권력, 물욕, 지식욕, 명예욕과 함께 관념적이고 교조적인 세계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부에서는 주자학적 방식으로 재구성한 윤리와 사회질서, 신분의 철저한 구분과 계급 차별을 낳게 한 연동체계, 벼농사를 제외한 모든 산업의 억제, 주거와 이동의 제한을 강요하면서, 불합리하고 자의적인 형식논리의 강제적인 집행 등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자기들만을 위한 틀(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정의’ ‘도덕’ 즉 ‘仁 義 禮 智’를 표방했다.

그들은 움직이기를 싫어했다. 모험과 탐험은커녕, 운동과 여행을 싫어했으며, ‘양반걸음’이라는 특유한 몸놀림을 했다. 특히 항해와 해외여행은 무가치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했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만든 세계의 한계와 치부를 인식하고, 다른 세계와 상호비교함으로써 외부세계의 실상과 정상적인 세상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였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고에 서툴렀고, 금기시했으며, 한편으로는 두려워했다. 자신들의 눈과 마음으로 세계를 해석하거나 삶의 본질과 실제적인 가치를 탐구하지 못했고, 그럴 배짱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새로운 학문을 창조하거나 새롭고 독창적인 지식, 예술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인 권력획득의 유일무이한 수단인 학문만 해도 용기있는 아웃사이더들은 말 할 나위조차 없고, 약간의 변용조차 용납을 못해 말살시키려고 광분했다.

그들이 추구하고 누린 문화는 오로지 중국의, 그것도 한족으로 외장된 문화이었다. 주자학적 학문과 주자학적 예술뿐이었다. 지금도 높이 평가하려는( 왜인지 모르지만.) ‘詩’ ‘書’ ‘畵’ 외에는 어떠한 문화나 학문, 예술도 용인하지 못했으며, 중국 문화 외에는 알지도 못했고, 설사 전해졌다 해도 수용하지 못했다. 그 무식한(?) 성리학자들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우수한 청나라나 일본의 문화를 수준 낮은 것으로 멸시했고, 이러한 왜곡된 사고와 비뚤어진 인식은 아직도 지식인들에게 두꺼운 멍에와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의 역사를 몰랐다. 주자학적 가치관에 영향 받아 생겨난 그릇된 조상존중의식으로 조작된 것이 적지 않은 족보를 맹신하면서 ‘가계 지상주의’에 함몰되었다. 이러한 작업들이 권력과 부를 효과적으로 독점할 수 있는 방편과 수단으로 악용된 것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이들은 정작 자기 집안이 속한 더 큰 사회인 마을, 나라, 세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자기를 존재하게 한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외부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를 이루어왔는가를 몰랐고, 알려하지 않았다.

압록강 중류에는 폭이 좁은 강물과 거의 붙어서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이 있었다. 현재도 우수하고 뛰어나고 거대한 유적이기 때문에 200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이다. 기함을 할 일이지만, 이 ‘국내성’과 ‘광개토태왕비’ 조차도 조선조의 선비들은 금나라의 황성, 금나라 황제비로 알았다.

이렇게 자기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알기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자의식과 자존심을 갖고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은 주자학이라는 주체 집단의 탄생과 ‘조선’이라는 국가의 출발부터 비자주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는데, 권력을 장악해가면서 외세의존적이고 사대적인 태도는 더욱 심화되어 자주와 굴종의 기준마저 사라졌다. 때문에 습관적으로 강국에 굴복해 왔으며, 중국의 부당한 압박에도 저항은커녕 항의조차 못했다. 그들은 나라와 자신들의 활동영역을 확장시키거나 백성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하지 않았다. 평화와 중화적인 질서를 보전한다는 명목을 갖고 백성들이 굶어 죽어나가도 스스로 그은 선을 넘지 않았다. 오히려 아사를 면하기 위해 산 속이나 섬으로, 국경 밖의 무인지로, 바다로 떠나면서, 화전이나 밀무역으로 먹고 사는 백성들을 잡아다 주리를 틀거나 살육했다.

 

그들은 나약하고 때로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철저한 위선자들이었다. 내부의 한심한 현실뿐 만 아니라 외부세계, 즉 국제질서와 나라가 처한 현실을 몰랐고, 알려하지 않았다. 무지할 뿐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거나 관리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집단이었다. 국제질서의 현상과 변화를 자기 나라와 백성들의 발전을 위해, 모험은커녕 상식적으로조차 활용하지 못했다. 외적의 침입이 분명하고 국가의 존망이 눈앞에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회피하고 부정했으며, 심각성을 주장하고, 우려와 대비를 주장하는 부류들을 적으로 몰아 억압하거나 죽였다. 비겁한 그들이 회피하면서 세운 명분은 전쟁의 방지와 백성들의 생명보호, 그리고 중화적 질서의 존중과 의타심이었다. 이는 현실을 모르고, 안이한 상황에서 자가발전한 사변적인 태도와 교조적인 사고의 산물이었고, 실제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이기심과 드러내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공포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럴듯한 명분과 도덕을 내세우다가 막상 전쟁이 터지고, 자신들의 안위가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으면 허겁지겁 도망치면서, 저항도 제대로 못한 채 현실에 항복하였다. 나중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항전한 사람들을 적으로 몰아 무참하게 복수를 행하는 부정직하고, 비굴한 무리들이었다. 보통 때에는 평화와 안전, 신중함이라는 좋은 명분은 다 갖고 있다가, 이기에 닥치면 가장 먼저 굴복하고, 자기 생존과 출세에 혈안이 된 무리들이다.

惡人이고 비겁자이면서, 善함을 표방하고, 신중함과 평화를 외치는 그들.

백성들의 삶과 권리 인권은 관심이 없었으면서 인간의 도리와 도덕, 자신들의 지식 체계만을 맹신하고 절대적으로 강요했던 그들.

파편화된 지식들, 그 것 조차 남의 것을 모방 한데다가, 현실과는 무관한 것들로 채워진 채 로, 안에서만 큰소리 치고, 밖에 나가서는 자기주장은커녕 발언조차 못하는 무리들.

그 너절한 지식인들의 나라인 ‘조선’.

 

그들만을 생각한다면, 그들만의 피와 혼이 나에게 전달되었다면, 이 절망감을 견뎌내기 힘들 터인데.

하지만 그 조선에도, 그 지식인 무리들 가운데에도 비록 많지 않은 이 들지만 ‘아웃사이더’로서, ‘顯流’가 아닌 ‘潛流’로서 존재했고. 그 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에 이렇게 이 나라의 백성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순신, 김시민, 곽재우, 박지원, 어재연, 이상설, 최재형, 김교헌, 서일, 홍범도,이승만, 박은식, 신채호, 김구 ...

고마운 분들이다. 그 분들을 떠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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