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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이방의 딸 <117>

평민들은 현대인처럼 개방적인 시대였습니다. 간통도 하고 겁탈도 쉬쉬하며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선비들은 달랐습니다. 양반 가문은 욕망을 억제함으로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사는 조선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 이성을 사모하는 마음은 현대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좋아하면 여자가 싫어하고 그 반대도 있으니 사랑으로 얽힌 슬픔으로 눈물이 마를 새가 없습니다. 게다가 재산의 차이나 신분의 차이같이 외적인 차별로 사랑이 맺어지지 못하면 퇴짜 맞은 패배감과 자신의 처지에 비관해 엄청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어느 고을에 이방이 있었는데 딸이 있었습니다. 귀여운 용모에 애교도 많아서 주변에 남자가 끓었지요. 그러니 자연 콧대가 높아 웬만한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그만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상대는 이방의 집을 지나 서당으로 가는 선비였습니다.”

이방의 딸에게 접근하는 남자보다 외모가 뛰어난 것이 아니었지만, 양반이라는 신분과 어려운 글을 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녀는 언문으로 쓴 편지를 돌에다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담장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비에게 힘차게 돌을 던졌습니다. 느닷없는 돌 세례에 놀란 선비가 편지가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집어서 읽어내려갔습니다. 담장 안에서는 이방의 딸이 숨을 죽이고 다음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데 선비는 편지를 쫙 찢어버리고는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훔쳐 본 딸은 절망과 함께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이방이 선비를 찾아가 딸을 한 번만 만나달라고 통사정을 했으나 무심한 선비는 거절했습니다. 며칠 후에 이방의 집 앞을 지나가는데 비가 갑자기 쏟아져 피할 곳을 찾다가 할 수 없이 이방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방은 이것이 하늘의 뜻으로 단정하고 딸과 만나기를 청했습니다. 할 수 없이 딸 방에 들어간 선비는 이방의 요청대로 이마라도 짚어주기를 바랐지만, 수건으로 손을 감고 얼굴을 쓰다듬고는 나가버렸습니다. 제 말이 끝나자 손님들이 탄식합니다.

“이방의 딸은 선비가 양반이라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기고 절망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상사뱀이 되어 선비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선비의 눈에는 소름 끼치는 뱀이 방까지 따라와 방구석에서 노려보고 잠을 잘 때는 몸을 휘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살 수가 있겠습니까?”

몸이 바짝 마른 선비를 보다 못해 퇴마를 잘하는 스님을 불렀습니다. 스님은 뱀을 잡아 선비가 쓰는 붓 대롱에 넣었습니다. 기분은 나빴지만 그렇게라도 상사뱀을 대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붓 대롱에 갇힌 상사뱀이 안에서 지랄발광을 쳤지만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글을 쓰다가 소변을 보려고 붓을 놔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철부지 동생이 붓대롱 속에 갇힌 상사뱀을 보겠다고 열자 뱀이 뛰쳐나와 동생을 감아 죽이고 차례차례 집안 식구를 죽이고 마침내 선비도 감아서 죽여버리고 나서 자신도 죽었습니다. 이방의 딸이 뱀으로 변한 것은 신분이 낮아 무시당했다고 분노했기 때문에 일족이 몰살당했던 것입니다.

손님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양반에게 무시당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되살렸습니다.

깨갱깨갱. 제 재담이 끝나자 사물놀이패들이 등장하고 저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술에 취한 뺑덕어멈이 보이지 않기에 하녀에게 물었더니 딸이 데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뺑덕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 사실일까?’

영 믿어지지 않습니다. 뺑덕이가 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고 해서 내가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내게는 오직 아지 아씨밖에 없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만 그녀와 똑같이 생긴 김우희라는 여의사를 보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내일모레면 보름이니 백마도에 가서 김우희를 만나야 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는 이부자리에 들어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밤새 몇 백 년 뒤의 꿈을 꾸고 일어나서는 사흘 잔치의 마지막 재담을 해야 하니까요.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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