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사설·기고
[기고] 대만의 관광자원을 만나다
김형철 조교수
김포대학교
항공관광경영과

대만(Tiwan)은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17세기부터 네덜란드, 청나라, 일본 등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자,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피신, 대만의 행정·입법·사법부 3권을 장악했다. 이후 대만과 중국과의 갈등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필자의 학창시절에는 중국은 中共이었고 自由中國이 지금의 대만이었다. 자유중국의 독재자인 쟝제스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중국대륙을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오쩌뚱에게 광활한 대륙을 내주고 문화재만 싹쓸이하여 대만으로 들어갔다. 그는 본토수복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대만을 중앙집권적 독재국가로 만들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신속한 국가주도 관치경제로 아시아의 4마리 용이 되었던 나라인 대만을 보러 필자는 타이베이로 날아갔다.

이번 여행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패키지 여행이었다. 2월 22일 금요일, 아시아나 항공 711편은 도원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 안내판 방향으로 빠져 나오는데 공항직원이 플라스틱 카드를 나눠주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체 많은 관광객들이 그 카드를 들고 나가는데,필자는 그 카드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가다가 낭패를 당하였다. 현재 대만에서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큰 곤욕을 치루고 있으며 육류가공품은 일체 반입을 불허하고 있다. 결국 그 카드는 그러한 농축산품이 없다는 표시였고 필자는 그 카드가 없음으로 인해서 가방검사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프리패스하고 있는데, 필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가방 엑스레이 검사를 받았고 필자의 가방 안에 있던 파리바게트 빵은 압수당하였다. 어떤 물건이든 강제로 빼앗기는 것은 불쾌하다. 그렇게 대만에서의 첫 감정은 분노로 시작되었지만 입국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지 가이드의 유머로 희석되었다.

“선생님 ! 대만은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니 시계를 맞추어 주세요. 1시간 젊어지셨습니다”

어느 누구인들 어려졌다는데 기분 나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가족 8명을 포함하여 패키지 여행객 16명이 모여서 현지 관광버스로 이동하였다. 16명인데도 35명이 탈 수 있는 2층 버스 같은 대형버스가 나오니 기분이 업(UP) 되었다.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36년간 식민지배를 받았는데 대만은 일본에게 50년 식민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인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과히 나쁘지 않다. 오히려 우호적이다.

일본이 지배하면서 철도도 놓아주고 학교도 세워주고 병원도 건립해주어 대만근대화를 이루게 해주었으니 고맙다는 것일까? 아니면 워낙 많은 세월을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 지배했던 나라들 가운데 그나마 일본이 가장 낫다는 것일까? 아무튼 가이드의 설명도 대만사람들은 일본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이한건 4일 동안 관찰했는데 대만인들의 자동차는 거의 대부분 일본제품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산 자동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2층 버스 같은 Coach 도 일본스타일이다. 셋째 날 식사를 했던 샤브샤브 식당도 일본스타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샤브샤브를 먹을 때, 몇 명이 하나의 냄비에 끓여서 육수, 고기, 야채를 먹는데 대만인들은 8명이면 각자 8개의 냄비에서 끓여먹는 것이다. 일본의 세븐일레븐 편의점도 대만 곳곳에 널려있다.

반백년 지배를 했던 나라를 좋게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을 좋게 보며 배울게 많은 나라라는 것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인들은 친절하고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며 깔끔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며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일본을 많이 방문했지만, 일본의 거리는 깨끗하다. 일본인들도 친절하다. 지나 가다가 옷깃만 살짝 스쳐도 연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문제는 정치지도자들에게 있다. 일본의 우익보수정치꾼들!

일본국민들은 괜찮은데 그들을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고, 그런 지도자를 만나는 것도 그 나라의 運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베트남의 호치민, 싱카포르의 리콴유 , 영국의 윈스턴 처칠, 프랑스의 샤를드골 등등 정치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자질 없는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된다.

 

첫날은 대만이 자랑하는 세계 4대박물관인 국립고궁박물관을 방문하여 지하 1층에 있는 중국의 국부 쑨원 동상을 보면서 투어를 시작하였다. 마오쩌뚱에게 패퇴당하여 중국 대륙을 내준 쟝제스는 4회에 걸쳐서 치밀한 준비와 계획을 가지고 자금성 유물들을 비롯한 엄청난 양의 국보급 문화재와 유물을 대만으로 가져왔고, 그것들을 지금의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자금성에서는 껍데기만 보고 컨텐츠를 보려면 대만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고궁박물관 유물을 전부 보려면 며칠이 걸리지만, 중요 유물만 보고서 박물관을 나서야 했다. 패키지 투어의 단점이 바로 이것이다. 어느 한 곳에 마음이 꽂히면 오래 있을 수 있는 게 자유여행이라면, 엑기스만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만 하는 게 패키지다. 쟝제스 기념관인 국립 중점기념당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자였지만 오늘날 대만정치경제의 틀을 잡은 쟝제스의 기념관을 여유있게 보고 싶었지만, 패키지여행인 관계로 쟝제스 대형동상과 근위병 교대식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물론 두 유형은 장단점이 있다. 패키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자유여행인 FIT만 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 틀린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서로 자기 것만 좋다고 하지 말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날은 송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태로각 협곡을 보러 화렌역으로 향하였다. 오랜만에 외국에서 타는 기차는 무척 정답고 낭만적이다. 우리나라처럼 객실과 객실사이를 오고가면서 식음료를 파는 직원도 있으며, 우리와는 다르게 쓰레기를 치워주는 청소원도 지나가고 있다. 우리 가족은 열차의자를 돌려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하며 사진도 찍고 하는 사이에 벌써 화렌역에 도착하였다. 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태로각 협곡이 있는 태로각 국가공원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칠성담 해변공원에서 태평양바다를 보며 힐링하고 태로각 협곡으로 갔다. 여기는 마치 장가계나 그랜드캐넌을 보는 것과 같은 엄청난 스케일의 협곡이 길게 뻗어 있었다. 神이 선물한 대자연의 웅장함이다. 쟝제스가 군인들을 동원하여 대만의 東西 190 km를 수작업으로 4년 동안 뚫어 굽이굽이 길을 만들었으며 버스 2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아슬아슬한 길이었고 펜스 밖은 일대장관을 이루고 있는 무릉도원이다. 이 공사로 22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절을 지었으니 장춘사이다. 쟝제스는 이 공사를 전투라고 정의했으며, 동서로 길을 낸 것 처럼 중국본토를 수복하자고 외쳤다고 한다.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그 시대에는 독재자의 광기어린 공사였지만 그것으로 인해 후손들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관광자원들이 있다. 바로 만리장성, 진시황의 병마용, 진시황릉, 앙코르와트, 페트라, 자금성 등등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셋째 날은 일본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이었던 지우펀 홍등을 보고 용산사와 중정기념당을 관광하고 스린야시장과 대만 젊은이들의 거리 서문정을 걸었다. 대다수 대만인들이 믿고 있는 도교의 중심사원인 용산사는 태평양전쟁 中 일본전투기의 폭격으로 많은 타이베이 시민들이 용산사로 숨었는데, 그 사찰로 떨어지는 폭탄을 마우신이 나타나서 바다로 던져버렸다고 하며, 수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목격했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 일수도 있지만 그 마우신을 대만인들은 철썩 같이 믿고 있으며 사업번성과 자식교육, 가정평안과 건강을 빌고 있었다. 우리 팀이 방문한 날도 억수같은 비에도 아랑곳 않고서 수많은 신자들이 위와 같은 내용들을 빌고 있었다. 필자는 크리스챤이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듯이, 어느 종교든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며 이 험한 세상의 길잡이다.

 

스린야시장에서 과일을 사고 저녁식사후 서문정거리로 갔다. 서울의 명동, 부산의 서면 같은 번화가에서 스토리텔링으로 매스컴을 탄 ‘눈물의 꽃’ 빙수를 먹으며 가족들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 순간을 잡고 싶다는 마음과 부모님과 같이 여행을 왔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오버랩되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은 필리핀 어학연수에서 친해졌던 대만친구를 서문정에서 기다렸는데, 그 친구가 와서 커피숍에서 회포를 풀었는데 40분의 짧은 시간이 너무 아쉽다고 하며 자유여행이었다면 좀 더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푸념한다. 필자는 1964년 일본 토오쿄오 올림픽의 신금단 선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 십년 헤어져 있다가 올림픽선수로 참가한 북한 신금단을 남한의 아버지가 만났는데 그 시간이 5분이었다. 부녀지간에 얼마나 그리웠으며 만나자마자 헤어졌으니, 40분은 괜찮은 시간이 아니냐고 했더니 수그러들었다. 어찌 친구만남을 부녀지간 상봉과 비길 수 있으랴마는 평소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우리 부녀가 가족여행을 통해서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않은가?

 

마지막날, 호텔조식을 먹고 대만이 자랑하는 ‘야류지질공원’을 관람하였다. 오랜 세월 해식과 픙식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독특한 모양의 바위들로 구성된 이 공원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가장 인기 있는 ‘여왕의 왕관’은 20분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공원 1구역에는 어부의 동상이 있는데, 파도에 떠밀려 내려가는 대학생 3명을 구하고 자신은 나머지 1명을 구하려다 파도에 말려 목숨을 잃은 어부의 살신성인을 기려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어느 시대든 어느 지역이던 義人은 존재한다. 명복을 빌어본다.

 

3박 4일의 가족여행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다음에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대만에 와서 자유여행을 즐기자고 하는 딸을 바라보며 흐뭇하다. 딸은 호주, 태국, 베트남, 홍콩, 마카오를 혼자서 자유롭게 여행하였다. 그렇지만 아빠는 패키지여행을 하련다. 여행사도 먹고 살아야지! 모두가 자유여행만 한다면 여행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빠는 자유여행을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전공이기 때문에, 여행사경영론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패키지상품을 많이 경험하는 거라고 ....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김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