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박진형

 

구두가 병상에 누워있다

 

산동네 비탈길을 콧노래 부르며 걸어오던 구두

터벅터벅 혼자 눈물 감춘다

뒤축은 가정의 무게를 잡아주는 저울이었다

 

해진 것은 아버지였다

구두코 벌어지고 뒷굽이 닳을수록

아버지 몸에 암세포 퍼져갔다

구두는 말기 암환자 병실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앙상해져 검불 같은 몸뚱이만 남은 구두는

아버지를 닮아갔고

맨발이 빠져나가 텅 비어있는 자리에는

아버지 발톱이 하나 남아 있었다

 

[프로필]

박진형 : 시에 신인상, 서울대 불어교육과,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용인외고 교사

 

[시 감상]

불현듯 겨울이 간다. 창백하게 늘어선 빌딩 사이 스며드는 햇살, 문득 아버지가 그립다. 옷을 파는 사람은 사람들의 옷만 본다. 구두 파는 사람은 구두만 본다. 그리움을 파먹고 사는 사람은 그리움만 본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무엇을 보고 살았을까? 우리들이다. 말기 암을 앓으시면서도 내내 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은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바쁜 핑계로 그리움조차 내던져버리고 살지 말자. 아버지는 나의 거울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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