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엑? 뺑덕이가 내게 시집오겠다고? 가만있자.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나는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니 대만의 감독이 만든 ‘음식남녀’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꿈에서 잠깐 본 영화라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거기서도 자기가 주방장의 아내가 될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은 자기 딸과 짝짜꿍이 되자 기절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 나이 지금 마흔아홉. 가만있자, 뺑덕이는 몇 살이더라. 손가락을 꼽으니 무려 서른 살이 넘습니다. 열 살 차이만 되어도 도둑놈 소리를 듣는데 무려 서른 살. 아,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큰 도둑놈이 될 수 있겠습니까.

“풍문, 뭐 하시오? 어서 나와 재담하시오. 주인어른이 듣고자 하오.”

오늘 끝난 줄 알았는데 스페셜로 한탕 더 뛰어야 합니다. 과외는 두 배를 받으니 안 나갈 수 없습니다. 의관을 정제하고 무대 앞에 섰습니다. 내일 할 김안국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 전에 돌아가신 김안국 대감이야기입니다. 그 집안은 삼 대가 내리 대제학을 지낸 명문가인데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용모가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머리 좋은 집안의 잘 생긴 얼굴이니 그야말로 천운을 타고난 것이지요. 그런데 나이를 먹어 공부할 시기가 되자 이런 멍청이가 없습니다. ‘하늘 천 따 지’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김숙이 의아해서 틈만 나면 꾸짖고 가르쳤지만, 천지(天地)만 알고 현황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좌중의 손님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김안국 대감하면 학문이 높기로 유명한 분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혹을 툭툭 치고 말을 이었습니다.

“참고 참던 아버지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안동으로 부임하는 동생에게 맡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김안국은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안동통판으로 내려온 삼촌이 아무리 공부를 가르쳐도 천지에서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결코 멍청이가 아닌데 어찌 글을 못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까닭을 물었습니다.

“숙부님, 제가 심심풀이 잡담은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데 글자만 보면 정신이 멍해지면서 머리가 깨질 듯 아픕니다. 차리리 저를 죽이시고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조카가 이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이 시골에서 그럭저럭 살게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도 명문가의 후손이니 장가를 보내야겠다고 색시감을 물색했습니다. 좌수가 집안이 부유하고 딸이 있다고 해서 매파를 보냈습니다. 놀란 것은 좌수입니다. 대제학 집안에서 자기 딸을 데려가겠다고 하니 의심부터 버럭 나는 것입니다. 서자가 아닐까? 아니면 병신? 그러나 뒤를 캐보니 적자가 틀림없고 얼굴도 꽃미남입니다. 그렇다면 사내구실 못하는 고자? 그래서 삼촌을 찾아가 김안국의 바지를 벗겨보니 실한 것이 당장 장가보내도 될 모양이었습니다. 그럼, 왜 이런 촌사람의 딸을 데려가려는 것인가 물어보니 공부와 담을 싼 것을 알았습니다.

“비로소 납득했습니다. 양반이 벼슬 못하면 그냥 집에서 사는 것이니 대제학의 가문과 혼사를 하는 것도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혼인을 하기로 정했습니다. 삼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서울로 편지를 보내 여차저차 혼인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이미 내버린 아들이니 아버지도 혹 떼낸 것처럼 시원해했습니다. 제 혹도 이렇게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다시 혹을 툭툭 치고서 말을 이었습니다.

“김안국은 명문가 덕분에 좌수의 데릴사위가 되었습니다.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으니 좋긴 한데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습니다. 알쓸남이 되었던 것이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자.”

나는 무심코 꿈속에서 본 드라마 대사를 내뱉고 말았습니다. 알쓸남이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된 좌중은 웃음이 터졌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김안국의 부인은 멀끔하게 잘 생긴 신랑이 공부하겠다고 책을 펴는 것을 보지 못하자 의아했습니다. 여기서 막걸리 한 잔 마시겠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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