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부자 상인의 잔칫집은 폭소가 터졌습니다. 다음은 광대들의 연희였지만 내 재담이 재미있다고 뒤로 미루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나서야 했습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청춘남녀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환갑잔치의 주인도 젊어서는 처녀 환심을 사려고 한 총각일 테니까요.

“선정을 베푸는 원님이 계셨습니다. 꿩 사냥을 보낸 포수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또 나리, 좀 전에 희한한 일을 겪어 아뢸까 합니다’ 하고는 사설을 늘어놓았습니다.”

평소 아랫사람과 격의 없이 지내던 원님이라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포수가 사냥한 꿩을 장대에 꽂고 돌아오는 길에 초가집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당에서 처녀들이 떠들썩한 소리를 내기에 발을 멈추고 고개를 비쭉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루에낡은 벙거지를 쓰고 숯으로 수염을 그린 나이든 처녀가 앉아 있었고 나이 차이가 있는 처녀 넷이 서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원님놀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님놀이는 고을의 현감이 백성을 재판하는 놀이입니다. 포수는 점점 더 흥미로워 숨을 죽이며 엿보고 있습니다.

“여봐라! 이방. 가맛골의 허생원을 당장 붙잡아 오거라.”

‘네’ 하며 처녀 한 명이 다른 처녀를 잡아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러자 원님이 묻습니다.

“허생원, 네게 딸이 다섯이나 있다고 하던데 모두 시집을 보냈는고?”

허생원으로 분장한 처녀가 풀 죽은 목소리로 대꾸합니다.

“사또, 막내도 혼기 되었고 큰딸은 스물을 훨씬 넘겨 서른이 가까워집니다. 부끄럽습니다.”

“왜 시집을 보내지 않는고? 신체가 불구인가. 아니면 행실이 나쁜고? 아니면 글을 모르나?”

허생원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칩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신체 건강하고 글도 제법 가르쳐 행실도 바르나 다만 집이 너무 가난해 며느리로 맞으려는 양반가가 없습니다.”

“허어, 가난한 집 처녀는 시집을 갈 수 없다는 말인가?”

“혼수도 마련할 길이 없어서……”

허생원이 울 듯하자 원님이 딱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가난을 핑계로 하지 말라. 돈 많은 반가에서 청혼을 안 하는 것은 흙 속에 묻힌 진주를 몰라보는 눈이 없어서다. 큰딸은 새말 김좌수, 둘째는 오릿골 오별감, 셋째는 큰골 이생원, 넷째”

포수는 이렇게 줄줄 다섯 명의 혼처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현감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섯 명의 양반과 허생원을 불렀습니다. 갑자기 원님이 부르고 영문을 모르고 달려왔습니다.

“모두 모였구려. 김좌수. 그대의 막내아들은 혼처를 정했는고? 아니면 내가 주선하겠는데.”

김좌수가 반색합니다. 당장 승낙했지요. 다른 네 명도 모두 원님이 주선하면 따르겠다고 합창을 합니다. 이번에는 허생원을 나오게 해서 이들과 사돈을 맺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금세 얼굴빛이 변합니다. 원님이 호통을 칩니다.

“아까는 내가 정해주면 모두 따른다고 하더니 왜 빼는 거요? 허생원의 집이 가난해서 그러는 거요? 내 알아보니 모두 참한 처자들이요, 혼수는 내가 마련할 것이니 걱정 말고 어서 정하시오. 어서 혼인서에 사주를 적으시오.”

다섯 명의 부자 양반들은 입이 썼지만, 어찌 원님의 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한날한시에 사주단자가 오갔고 관아에서는 신부가 가져갈 혼수품을 허생원의 집에 보냈습니다. 차일도 보내고 음식도 마련해 성대한 잔치를 벌이니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허생원과 그의 딸들은 모두 감격했고 이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임금님도 특별히 하사품을 내려주니 신랑집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화로 훗날 있을 이야기인데 댕겨 말한 것입니다.

“오늘의 환갑잔치도 이런 기쁨에 못지않으니 주인께서 만수무강하기를 바랍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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