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룡 
경영학박사
전)명지전문대학교
교수

그 날은 신부님이 사제서품 받은 지 25주년이 되는 은경축일이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6층 강당에서 한국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 회원들과 신부님의 어머니와 그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를 봉헌했다. 제대 바로 앞쪽에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장애인들이 나란히 자리를 차지했다. 미사가 끝나자, 먼저 예쁜 소녀들이 꽃다발을 증정했고, 이어서 신자들이 축하예물을 드렸다. 사제는 신자들에게 고마움에 대한 답례의 인사말을 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로부터 왜 사제가 됐느냐고 질문을 받았지만, 그 대답을 미뤄오다가 이제서야 말한다고 했다. 고교시절에 본당 ‘레지오 마리애’pr.에서 독거노인들과 말벗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참으로 바보같이 살았다”고 하면서 한숨 쉬었다. “난 남을 위해 아무런 도움을 준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여간 후회스럽다고 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단다.”

그날 나는 “사제가 돼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봉사의 삶을 살겠노라”고 결심했다. 그 길로 신학교에 들어갔고, 모든 과정을 마친 후 사제가 되었다고 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내가 성소를 받은 것인지, 아니 성소를 받아 달라고 하는 것인지 헛갈린다고 말했다.

신부님은 한국가톨릭장애인사목연구회 담당사제로서 우리가 회합을 가질 때마다 차茶 주문을 받아 1층 카페에서 3층 회의실 까지 기쁜 마음으로 찻잔을 날라다 주셨다. 그분은 사제로서 고독과 싸우면서 봉사하며 살아가는 외길 인생이 아니던가 말이다.

우리 사회는 시인이 펜대를 버리고, 교수가 강단을 떠나 정치권력에 아부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신부는 끝까지 신부로서 거룩한 삶을 바치는 외길, 그 길은 어쩌면 고독할지라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아름다운 길이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대학교수로 있을 때였다. 일 학기 강의가 끝나면,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생들 3~40명을 인솔하고, 일본 ‘나가사키 성모기사 수녀회’가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열흘 간 현장실습을 가졌다. 그곳에 도착하던 첫날, 시설장인 원장수녀님은 찻잔을 들고 학생들이 모인 강단에 들어와 일일이 차를 따라준다. 또한 ‘구마모도’의 장애인 시설에서도 역시 원장수녀님이 직접 학생들 하나 하나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원장수녀님은 천사 같았다. 이와 같은 일은 일본의 일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란다. 사장이 방문자를 위해 직접 찻잔을 나르고 심지어 화장실 청소도 도맡아 한다고 했다. 참으로 훌륭한 문화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우리사회에서 사장이나 그 가족들이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모습과는 아주 대조되는 아름다운 문화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 진정한 봉사란 무엇인가? 원론적으로 말하면 “봉사란 말은 받들 봉奉자, 섬길 사仕자 ‘받들어 섬긴다’는 뜻이다”. 봉사하는 자세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기본이다.”

언젠가 신문기사를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R씨는 “자기 몸을 던져 남을 위하는게 진짜 봉사라고 했다”. 그는 15년 동안 에디오피아, 아이티, 네팔, 스리랑카, 베트남 등 십여 개 국가의 소외지역과 난민촌 수백 곳을 돌며 의료봉사에 참여한 ‘열린운영사’를 맏고 봉사하고 있는 K석유(주) 회장의 귀한 외동 딸이다.

또한 오래 전 나는 세무사 십여 명과 함께 지역사회를 위한 재능 바치기의 일환으로 노인복지관에서 주방 일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영양사의 지시에 따라 4시간동안 서서 무채를 썰고, 밥푸는 일, 설거지 등등 일을 했다. 땀이 쏟아지고, 허리가 끊어지듯 아팠다. 설거지는 제때 처리하지 못해 당황했다. 이처럼 간단한 일인데도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았다. 마치 <모던 타임스>영화 속의 주인공이 빠르게 움직이는 콘 베어 벨트 앞에서 미쳐 처리하지 못해 쩔쩔 매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내 작은 봉사로 어르신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나 자신이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평상시 부엌에서 아내를 돕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그러니까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하면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가 웬 말인가 정말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미국의 매사추세츠 MIT공대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 교수는 자원봉사에 대해 ”나비들이 날아가며 일으키는 작은 바람이 태풍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는 브라질에서 나비 한마리가 일으킨 날개 짓이 대기의 흐름을 변화시켜 택사주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명 ”나비효과 buterfly effective"개념을 창안했다. 시작은 작지만 그 결과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자네의 시작은 보잘 것 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 이니라”.(욥기 8,7)에 나오는 말을 깊이 묵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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