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

“술 잘먹고 욕 잘하고 게으르고 싸움 잘하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애호박에 말뚝 박고 물통 이고 오는 부인 귀 잡고 입 맞추고...”

신파극 같은데서 놀부전 판소리를 듣다 보면 사람은 오장육부지만 놀부는 오장칠부라는 대목이 나온다. 놀부에게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큰 장기 주머니만한 심술보 하나가 더 곁간 옆에 붙어서 심술보가 한번씩 뒤틀리면 심술을 부리는데 썩 야단스럽게 피웠다고 한다.

사람들 누구나 몸속에 많은 기관이 있지만 한의학에서는 오장육부가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모두 수행한다고 말한다. 오장(五臟)은 간장(肝臟), 심장(心臟), 비장(脾臟:지라), 폐(肺:허파), 신장(腎臟:콩팥)이고, 육부(六腑)는 담(膽:쓸개), 소장(小臟), 위(胃), 대장(大腸), 방광(膀胱:오줌통), 삼초(三焦)를 이르는 말이다.

한해의 카렌다가 한 장 달랑 남은 어느 12월 초. 그 오장육부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주재한 장기는 뇌(腦) 선생. 안건은 12월 들어 잦아지는 주인의 음주에 대한 문제와 대책이다.

주인 때문에 일이 바빠 시간 내기 어렵지만 작년 주인이 겪은 불상사를 고려해 한 장기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먼저 뇌 선생이 발제했다.

“작년 이맘때 아무런 대책 없이 주인이 저지른 만행으로 장기 여러분이 심하게 고초를 당한 것이 사실입니다. 올해는 미리 할 일을 정해서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합니다. 격의 없이 좋은 의견들을 내십시오.”

제일 처음 간장(肝臟)선생이 나섰다.

“누가 뭐래도 술이 들어오면 제일 큰 고생은 납니다. 가뜩이나 이것저것 할 일도 많은데 이맘때면 만사 제쳐놓고 알코올을 분해하는데 전력을 다 해야 하니 몸이 축날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열심히 알코올을 무찔러도 소주 한 병 분해하려면 하루 이상 걸립니다. 2차,3차까지 들이 부으면 나는 뒤치다꺼리에만 며칠이 걸립니다. 게다가 2~3일에 한 번만 마셔주면 그럭저럭 꾸려나갈 텐데 매일 새로운 적이 몰아닥치니 작년에는 결국 탈이 난 거에요. 그 후유증으로 내 세포 사이에 지방이란 놈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아 일을 방해하니 설상가상입니다. 더욱이 비타민이나 무기질처럼 알코올을 무찌르는데 꼭 필요한 자재가 충분치도 않고요.”

이 말을 위장(胃臟) 선생이 받았다.

“내가 하필 한국사람 몸에 있어 만성 염증을 달고 사는 거야 팔자려니 하지만 주인은 궤양을 앓은 적도 있는 판국에 꼭 맥주만 마십니다. 낮은 도수의 술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위산이 분비되는데 궤양이 도질까 걱정이 되고 높은 도수의 술은 피가 날까 걱정이에요.”

이어서 소장(小臟) 선생 차례.

“사실 알코올을 90% 정도 흡수하는 건 납니다. 안주발이라도 좋으면 어떻게든 흡수를 막아보겠는데, 이건 뭐 그냥 깡술이니... 미안합니다. 다 내 탓인가 봅니다.”

듣고 있던 식도(食道)와 대장(大臟) 선생도 거들었다.

“우리도 염증을 달고 살아요. 언제 피가 날지 몰라 항상 긴장 상태지요.”

한쪽에 있던 췌장(膵臟) 선생이 나섰다.

“사실 나한테 알코올은 쥐약이에요. 술만 들어오면 일을 하기 싫어요. 이렇게 계속 일을 안 하다가 당뇨가 올까봐 걱정입니다. 그리고 이 작자는 술 마실 때면 뭘 그리 먹는지 소화 효소를 내보내야 하는데 일을 하기가 싫어요.”

회의 도중에도 일을 멈출 수가 없어 바쁘던 심장(心臟) 선생이 한마디 거들었다.

“내 사정도 살펴 주세요. 알코올만 들어오면 여기저기서 피가 모자란다고 해 일만 죽어라 합니다. 과로로 내가 먼저 망가질 지경이에요.”

듣고 있던 폐(肺) 선생 왈.

“그나마 내가 열심히 알코올을 분해해야 하는데 해봐야 10%밖에는 안 되긴 하지만 그거라도 어딥니까. 간장(肝臟) 선생을 도울 수 있으니 그런데 이 작자가 담배까지 피워대니 그마저도 힘든 형편이에요. 한마디로 내 코가 석자입니다.”

회의가 길어지자 뇌(腦)선생이 서둘러 결론을 냈다.

“어떻게든 주인에게 비타민과 무기질을 챙겨 먹게 하고, 음주 전에 식사를 하게 하며, 최소한으로 1주일에 2회 이상의 음주는 막아 보겠습니다. 장담은 못하지만요.”

“아아! 이 인간이 또 술 먹을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자, 오장육부 여러분! 우리 어떻게든 살아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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