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연하게 제 말을 듣고 있던 좌중의 손님들은 못된 여자라는 말에 귀를 쫑긋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 이야기가 재미있거든요. 나는 보라는 듯이 혹을 툭툭 치고 나서 말을 이었습니다.

“벼슬아치 중에 김 판서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임금께서는 신하들의 동정을 살펴보니 그분만 첩이 없었습니다. 과연 군자로다 생각하고 내시를 시켜 알아보았습니다.”

김 판서의 뒷조사를 하고 돌아온 내시가 보고합니다.

“전하, 김 판서에게 첩이 없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지조가 굳다기보다는 부인이 질투심이 강하고 성품이 호랑이 같아서 첩을 두기는커녕 여종도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이 무서워 친척 간에도 여자는 판서에게 다가와 말도 못한답니다.”

내시가 말을 이었습니다. 아내의 눈이 무서워 외출도 못하고 사랑방 마당에 화단을 가꾸어 놓고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 것이 판서의 일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무심코 보고 중얼거렸습니다.

“오, 꽃이 활짝 피니 아름답구나!”

남편이 뭐하나 감시하러 왔던 부인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얼굴이 새빨개진 부인이 여종을 시켜 도끼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화단에 들어가 도끼로 꽃나무를 찍어버리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꺾인 꽃나무를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그, 그래? 정말 무서운 부인이군. 그래.”

임금은 이런 여자를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판서나 되는 벼슬아치가 부인에게 휘둘리면 기강이 무너집니다. 또 다른 벼슬아치의 부인이 알게 되면 따라서 남편에게 기어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커져 대궐까지 소문이 돌면 정비는 물론이고 후궁도 질투심을 부릴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 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 판서를 불렀습니다.

“김 판서, 고생이 많군 그래. 이번에 내가 부인의 기세를 꺾을 테니 들어주겠소?”

임금의 말씀에 신하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기세를 꺾는다는 말에 황송했습니다.

“네, 하오면 불러 꾸짖을 요량이십니까?”

“아니요. 사약을 내릴 것이요. 이번에 새로 장가들어 보시오.”

“네엣? 전, 전하 그래도 어떻게 사약을?”

김 판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제가 꿈속에서 본 사극만 해도 여러 편 있습니다. 멀리는 연산군의 어머니 윤비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어 사약을 받았고 장희빈도 질투했다는 죄로 사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임금이 신하의 부인을 사약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만고에 없던 일입니다. 임금은 금부도사를 불러 당장 사약을 가지고 가게 했습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금부도사 앞에 부인이 무릎을 꿇고 임금님 교지를 들었습니다.

“김 판서의 부인은 들으라. 그대의 성정이 거칠어 남편이 첩을 들이고자 해도 질투가 무서워 못하고 있다. 이것은 부부유별이라는 삼강에 위배되어 강상죄에 해당하니 그 벌로 사약을 내린다. 그러나 첩을 들이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벌을 면하게 해주겠다.”

청천벼락 같은 소리입니다. 부인이 목숨을 건지려면 첩(시앗) 들이는 것을 용인해야 합니다. 그러자 집안의 식구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망설임 없이 내뱉습니다.

“제가 시앗을 보느니 차라리 죽겠나이다.”

앞에 놓인 사약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비상을 탄 사약이 아니라 꿀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보고를 듣고 한탄합니다.

“어쩔 수 없소. 김판서, 내 말도 듣지 않으니 그냥 살다 죽으시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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