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밝이 술

 

신순임

 

전화로 묵세배 드리는데 도통 못 알아봐
엄마 바꿔달라니
“누군 동 엄마 찾네” 하시어
한 바탕 웃음으로 수다 이어가노라니
오도 가도 못한 묵세배
흉보는 말은 제꺽 알아들으신다며
귀청 가득 지청구 쏟아
나이 한 살 부조하는데
심정 상한 밭어버이
독한 소주로 속 풀어내신다니
평생 드신 이명주(耳明酒)
너무 과해 귀 멀었던가
귀 밝아라, 눈 밝아라
덕담 없이 홀로 드셔 그런가

 

초롱같은 정신 보면 영 효험 없는 것 아니라
돌아오는 대보름엔 따뜻한 청주 꼭 올려야겠네

 

[프로필]
신순임 : 조선문학 등단, 시집[무첨당의 5월][앵두세배][양동 물봉골 이야기]외 다수

[시 감상]
음력 정월 대보름 아침이면 귀가 밝아진다는 의미로 술을 데우지 않고 차갑게 마시는 풍습이 있다. 밝아진 귀로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 듣고 살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세시풍속이다. 곧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온다. 이번 정월 대보름엔 식전에 차가운 술 한 잔 부모님께 올려드리고 더불어 한 잔 마셔보자. 한 해 동안 듣고 싶은 소식만 따듯하게 들려올 것 같다. 부모를 향한 시인의 마음이 비단결이다. 부럽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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