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

지금은 종영된지 꽤 오래됐지만 나의 까가머리 중학생 시절의 히어로는 단연 TV인기수사물‘수사반장’이었다.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 공중파 방송을 타고 전국 시청자들을 매혹시켰던 드라마 수사반장은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말까지 20여년간 880회 분량의 단막극 형식으로 방영됐다. 탤런트 최불암, 조경환, 김상순, 남성훈 등이 형사로 등장했던 이 드라마는 생각할 수록 애틋한 향수를 느끼게 하고 가슴 한 켠에 정감을 자아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는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관들의 애환과 함께 액션을 가미해 시청자들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랑을 얻을 수가 있었다.

‘수사반장’은 명탐정 셜록홈즈처럼 숨 막히는 두뇌플레이로 반전을 거듭하다 끝내 범인을 잡는 그런 긴장감을 주지는 못했지만 극중의 분위기나 형사들의 모습이 나의 일부이고 생활인양 서민적이고 푸근해서 충분히 매력을 끌게 했다. 또한 형사의 상징인 바바리 코트를 입은 반장(최불암)이 특별한 미남도 아니고 전광석화처럼 몸을 날려 권총을 뽑는 전문가도 아니고, 콜롬보형사처럼 어리숙해 보이지만 재기가 번득이는 그런 명탐정과도 거리가 멀었지만 날 선 눈빛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현역 형사들처럼 전혀 녹슬지 않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추리 소설이나 형사이야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반장의 신봉자가 됐고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의 큰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세상에 어느 직업인들 휘파람 불며 슬렁슬렁 지내랴마는 수사반장은 매사건마다 진실로 고뇌했다. 그리고 매우 인간적이었다. 용의자를 다그치고 목청을 높이지 않았다. 윽박지르기 보다는 설렁탕을 시켜주고 담배를 권하며 용의자의 양심에 호소했다. 그리고 반드시 ‘승점’을 따냈다. 반장은 언제나 덥수룩한 머리에 다리미질한 흔적이 없는 옷을 걸친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였다. 과중한 업무를 막걸리 한사발로 푸는 그는 참으로 인간미 넘치고 친근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흉악범을 잡아 교도소로 보내면서‘인간을 미워하지는말라’던가,‘우리사회 전체가 공범’이라는 멘트를 읊조릴때면 나는 괜히 숙연해지곤 했다.

 

나는 늘 반장을 닮으려 애썼다. 훗날 내 자식들한테도 반장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고 꼭 실천하리라 굳게 마음을 먹곤 했다. 반장을 좋아하다 보니 함께 출연했던 김형사, 조형사,남형사도 덩달아 내 가슴 속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사실은 수사반장과 그 팀만이 아니고 수사반장에 등장하는 범인들도 나의 우상이었다. 형사들의 추적을 받고, 혹은 붙잡혀 수감되는 죄인들이었지만 수사 반장을 닮았는지 인간적이었다. 나는 그들이 수갑을 찬 두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어머니’를 외칠때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반장이 내게 인간미를 전수했다면 범인들은 바른 삶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 타산지석이었다.

 

수사반장이 TV에서 종영되면서 이제 희미한 추억일뿐 내 우상도 사라졌다. 아쉬운 것은 요즘은 반장처럼 고뇌하는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부하직원을 다독이는 반장의 인간미는 찾아 볼 수가 없고,일만 터지면 수습보다는 책임회피에 급급하는 인사들로 가득한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 슬프다 못해 안타까운 것은 범인들마저도 인간다운 구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부르며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래서 다시는 이러한 범죄에 발딛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남자다운 범인이 왜 한명도 없단 말인가. 수사반장이 종영되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수사반장과 비슷한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프로가 생겨났다.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형사와 범인들은 인간미를 느끼게 하기 보다는 정형화된 세련미를 주고 어딘지 모르게 약삭빠른 깍쟁이 같은 냄새가 나서 수사반장에서처럼 드라마의 재미가 없고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어릴적 우상인 수사반장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인데도 더욱 그립고 가슴시린 정감을 잊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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