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좌중의 사람들이 끄덕였습니다. 혼인에 매파가 장난치는 것이 많았거든요. 2018년 대한민국에서도 사기 결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찌 알았느냐고요? 어제 꿈에 뉴스에서 방송하더군요. 학력 속이고 직업 속이고 부모, 시부모까지 가짜 대행에 결혼식 때는 알바 손님까지 동원하고요. 어떤 여자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도 처녀로 속이고 혼인하더군요.

“이렇게 장님임을 속이고 혼인한 양반 처녀가 있었습니다.”

신랑은 서울의 명문가 아들로 학문이 뛰어나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신부도 같은 수준의 집안이었는데 처녀 귀신으로 사느니 혼인이나 해보자고 속인 것입니다. 첫날밤이었습니다.

“이보시오. 이제 방에 들었으니 눈을 좀 뜨시오.”

온종일 치른 혼사로 피곤한 신랑이 신부에게 은근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도련님, 아니 서방님. 저는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입니다.”

그 말에 신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쩐지 신부 쪽 식구들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을 상기했습니다. 보나 마나 첫날밤 신랑이 “속았다!”를 외치며 방에서 뛰쳐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지요. 신랑이 한숨을 푹 내쉬자 신부가 말했습니다.

“그냥 나가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자 신랑이 대답했습니다.

“혼사는 인륜지 상사라고 했소. 또 눈이 보이지 않는 것도 어찌 임자의 탓이라 하겠소. 이것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겠소.”

이 말에 신부는 감격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신랑은 그녀를 꼭 껴안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신랑은 이미 하늘이 정한 것이니 되돌릴 수 없다고 하며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내는 눈만 멀었을 뿐이지 현명하고 학식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주위에서 어떻게 말하던 알콩달콩 정이 깊었습니다. 일 년 뒤에 남편은 과거에 합격해 벼슬아치가 되었습니다. 이년 뒤에는 건강하고 잘생긴 아들을 낳아 장님을 아내로 들였다는 우려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기쁨의 뒤에는 슬픔이 따르는 모양입니다. 그해 역병이 돌았는데 그만 남편이 병에 걸려 죽은 것입니다. 남편은 죽기 전에 아들을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고 세상을 떴습니다. 장님 아내의 통곡이 하늘까지 미쳤지만 이미 어쩔 수 없습니다. 장례가 끝난 뒤에 가산을 정리한 장님 엄마는 자신을 사랑해준 남편의 앞에서 아들을 인재로 키우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장님 어머니는 떡을 만들어 팔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장님이 어떻게 떡을 만들 수 있느냐고 말렸지만, 가게를 열었습니다.

“장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코와 귀, 촉각이 예민합니다. 그래서 떡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금방 도성에서 맛있기로 이름난 떡을 만들 수 있었지요. 외아들은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유언을 지킨 장님 엄마는 떡집을 처분하고 조용히 손자 손녀를 기르며 살았습니다. 식구가 늘자 집을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집 짓는 목수가 안주인이 장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목재도 춘양목을 쓰라고 했는데 저급한 것으로 속이려 들었지만, 손으로 만져보고는 금세 알아차렸습니다. 계획대로 속지 않자 기둥을 거꾸로 세웠지만, 손으로 더듬어 위아래가 바뀐 것을 알고 호통을 쳐서 바로 잡게 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장님 어머니는 이렇게 현명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집안을 잘 다스리다가 늙어 죽자 유언대로 자신을 첫날밤에 내치지 않고 아내로 맞아준 남편의 곁에 묻힐 수 있었습니다. 장한 아내이자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못된 여자도 있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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