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생

서형국

짤 만큼 짜낸 시를 탈수기로 돌리면
돌돌 원심력은 최대한 멀리 생각을 떨어냅니다
그러면 낡은 문장이 행여 돌아올 길 잃을까 미련으로 묻어오다
자음과 모음으로 부서져 
그림 형제 동화처럼 빵가루로 흘려집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눅눅한 약속을 탱탱한 다짐에 널면
반성은 마를수록 먼 황무지 보름달로 뜹니다
그 달 띄워놓고 마누라 구멍 난 검정 스타킹이라 쓰다가
새로 산 바지에 지져진 담뱃빵이라 읽다가
캄캄한 앞날에 밝혀진 등대 빛으로 덮고 눈을 감기도 합니다

그러다
방법 없는 고민에 문득 배가 고파지면
나는 채 마르지도 못한 활자를 주섬주섬 주워 먹으면서
어느새 탈수길 삼류로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프로필]

서형국 : 경남 창원, 2019 (월) 모던 포엠 최우수 신인상 수상

[시 감상]

한 해가 한 달 남짓이다. 저무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저무는 것들은 다음에 다시 피어나거나, 태어나는 것들이 있기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다 보면 쓸 땐 무척 잘 쓴 글인데 다음 날 읽으면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인의 말대로 그저 개고생이라는 생각에 좌절할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개고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무하고 격려하며 때론 질책할 때 더 큰 성장을 하는 것이다. 삼류라는 말은 일류가 되기 위한 초석이다. 어쩌면 글과 인생은 그렇게 닮았는지도 모른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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