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致梅)

박종희

 

이우는 꽃잎처럼 야윈 봄날이 저문다. 습관대로 핸들에 이끌려 도착한 병원 뒤뜰에는 꽃이 지고 여기저기 흩날리는 꽃잎이 하얀 꽃길을 내고 있다. 아직 어머니의 온기가 남아있을 휠체어와 도시락을 먹던 평상이 그대로다. 그저 어머니만 안 계실 뿐, 병원은 한 달 전처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어머니가 떠나시는 것을 예감했을까. 어머니가 가시던 날, 매화나무에는 붉은 꽃망울이 눈물방울처럼 매달려있었다. 터질 듯한 꽃망울로 어머니를 배웅하던 매화나무에 연녹색의 잎새가 무성한 것을 보니 생을 이끄는 것은 시간인 것 같다. 온 김에 어머니가 계시던 병실을 들여다보는데 내 집처럼 드나들던 곳이라 가족 같던 병원 직원이 아는 체를 한다.

어머니는 11년 동안 노인병원에 계셨다. 믿기 어렵지만, 어머니는 결혼생활 중 병원에 계시던 날들이 가장 자유롭고 마음 편하셨던 것 같다. 매사에 꼼꼼하고 완벽주의자였던 시아버님 때문에 어머니의 생은 늘 무기력했다. 남편이 가져오는 월급봉투 한 번 못 만져보고 생필품은 물론 어머니의 옷도 아버님이 사다 주셨다.

자식이 다섯이나 되고 남편이 있어도 어머니의 자리는 언제나 옹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님과 학교 문턱도 못 밟아본 어머니는 애초부터 기우는 혼사였다. 그래서인지 아버님은 늘 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자식들도 어머니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잔정 없고 무뚝뚝하던 아버님이 떠나신 후 몇 년은 사람 사는 것처럼 사셨다. 구질구질하던 젊은 날에 보상이라도 해주듯 시장에 가서 연분홍색 스웨터도 사고 몸뻬가 아닌 정장 바지도 사들였다. 박꽃처럼 하얀 얼굴에 크림을 찍어 바르고 연분홍색 립스틱으로 꽃잎 같은 입술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호사를 누려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머니가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부재를 확인한 어머니는 정신을 놓았다. 아버님을 보내면서도 흔들림 없이 꼿꼿하던 어머니가 큰아들을 앞세우고 나서는 생가지를 뚝뚝 부러뜨렸다.

어머니는 가장 믿고 의지했던 큰아들마저 떠나보내고 나서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쩍 잠이 없어진 어머니는 밤을 낮처럼 불을 밝혀놓고 낮과 밤의 사잇길을 통해 바람같이 지나 가버린 과거를 용케도 들추어냈다. 두서없이 쏟아내는 말을 주워 솔기를 봉합하면 어머니의 연둣빛 내력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생의 이력에는 풋풋하던 날들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어머니는 엉덩이에서 물감을 찍어 이불에 매화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머니를 덮어주었던 이불은 밤새 어머니가 그린 황매화로 꽃밭이 되었다. 어머니의 꽃밭은 계절에 상관없이 수시로 꽃을 피웠다. 그렇게 피어난 꽃은 순식간에 집안을 향기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죽을 만큼 힘든 고통도 세월에 섞이면 무디어지듯 하루가 다르게 낯설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면 자식의 삶도 흔들린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남편도 점점 말이 없어졌다. 해결점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서로에게 섭섭한 것만 쌓여갔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노인병원으로 모셨다.

치매는 영혼이 맑은 사람한테 오는 것 같다. 치매는 번뇌와 욕심을 접고 스스로 꽃에 다다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황홀한 세상이다. 평생 마음고생 하고 살았으니 남은 생은 마음이 가는 대로 살라고 주는 신의 선물 같다.

어머니는 치매가 꽃처럼 왔다. 박꽃같이 하얀 얼굴이 달뜨듯 붉어졌다. 아버님 그늘에서 큰소리 한 번 못 치고 살던 것이 한이 되었던 어머니는 헤실헤실 웃으며 마음속에 있는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냈다. 늘 웃고 손뼉 치고 노래도 곧잘 불렀다. 생의 마지막 구간을 걸으며 고통받는 환자 옆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어머니는 병실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가끔 “제가 누구예요?” 하고 물으면 어머니는 바로 “영순이” 라고 했다. 영순이는 가장 예쁘게 생긴 어머니의 조카딸이다. 어머니가 나를 영순이로 기억하는 것은 당신 눈에는 아직도 며느리인 내가 가장 예쁘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날, 어머니는 연한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나도 어머니가 입고 있었던 스웨터와 같은 분홍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어머니는 나한테 참말로 예쁘다고 하셨다. 살면서도 어머니 가슴속에는 내가 늘 예쁜 며느리로 있었던 것 같다.

폐렴으로 며칠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졌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져 가는 어머니를 종합병원 중환자실로 모시고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다섯 자식을 생산한 어머니의 아랫도리는 이미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생성과 소멸이 우주의 섭리라면 어머니는 이제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 눈물 바람에 남편도 오열했다.

남편과 같이 임종을 지키는데 영원한 부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어머니의 휑한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굴러떨어졌다. 어머니를 닮은 연분홍빛 눈물이었다. 가시면서도 자식 걱정을 하신 것일까. 어머니는 딱 하루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홀연히 떠나셨다. 매일 밤 꽃을 피워내던 어머니가 비로소 꽃이 된 것이다.

부재는 그 사람의 존재를 절절하게 증명하는 것처럼 어머니만 빠진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핏줄로 얽힌 관계가 때로는 통증처럼 아프기도 하다. 어머니 생전에는 병원에도 잘 오지 않던 시누들이 눈물도 찍어내고 더러는 원망도 쏟아냈다.

나라고 왜 할 말이 없었을까. 사람은 항상 자기 관점에서만 생각한다. 고마운 마음은 빨리 잊고 서운한 것은 오랫동안 간직한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 지난날을 되짚을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병실에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가 사실은 가족의 끈을 이어주고 있는 매개체였다는 것을 어머니가 떠나고 난 뒤 알게 되었다.

쉼없이 이별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한 바람 사이로 언뜻언뜻 더운 기운이 몰려온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 어머니가 떠나고 무심하게 내리쬐던 봄볕도 하얗게 소멸해간다. 고개를 들고 병실을 올려다보니 창문 사이로 헤실헤실 어머니가 웃고 계신다. 나는 다시는 못 올 어머니의 저무는 봄날을 내시경을 찍듯 아프게 탁본한다.

 

▶ 제17회 ‘김포문학상’ 전국 공모 우수상 수상 소감

 

박종희

 

당신이 매화꽃이 되어 떠나신 지도 1년이 지났습니다. 당신 닮은 매화꽃을 피우던 나무에도 벌써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잘 지내시는 거죠? 5년 사이에 양가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내느라 글 쓰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던 터에 수상 소식을 접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옆에서 늘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딸애한테 고맙고, 글 쓸 수 있는 재능을 주신 친정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유안진, 공광규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제 잠자던 감각기관을 깨웠으니 앞으로 깊이 사유하여 좋은 글 쓰겠습니다. 김포문학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

청주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0년 월간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흥문학상 수상, 매월당 문학상 수상, 경북문학대전 수상, 동양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외 다수 수상.

한국산문작가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세종시 주민센터 수필창작 강사,

충청매일 수필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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