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와서

 

박노식

 

한 상념이 오래 머무는 그늘 안으로
산비둘기 소리가 잠깐 들어왔다 나가버린다

삭정이를 바라보는 눈은 젖어서 잠시 고갤 돌려도 눈가는 축축하고
삭정이를 꺾어 그날 밖으로 꺼내 놓으니 그제야 눈가가 마른다

빈손으로 와서

겨울 처마 밑 한 줌 햇볕이 지나는 동안
나의 계절은 멀리 달아나는 산새의 길을 쫓는다.
 

(계간 position 161p)

[프로필] 
박노식 : 2015 유심으로 등단, 시집[고객 숙인 모든 것들]

[시 감상] 
가을이 소란하다. 침묵과 함께 겨울이 온다. 눈이 내리면 더 조용하다. 조용하다는 것은 스스로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앞을 보기보다는 뒤를 보게 된다는 말과 같다. 나는 무엇으로 왔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를 궁리하다 보면 빈손이다. 원인도 결과도 모두, 빈손 앞에서는 빈손일 뿐이다. 빈손에는 담지 못할 것도 담을 수 있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무엇을 담을지?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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