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식
김포대 총동문회장
전 경기도의원

나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그것을 고생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괭이와 가래를 한 자루씩 갖고 나가 아침에는 새벽별을, 저녁에는 저녁별을 보며 밭을 일구었고 논을 개간했으며 결국 자립할 수 있었다. 지금 김포평야에 나가보면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지난 여름 맹렬한 무더위 속에서도 농민들이 흘린 땀방울과 정성으로 얻은 눈물겨운 결실이다. 모든 생명을 소중히 키워내고자 하는 농부의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파종하고 비료뿌리고 김매고 난 뒤 수확할 때까지 농부는 하늘이 계절 따라 태양 볕과 빗물을 주면 주는 대로, 안주면 안주는 대로 하늘에 순응하며 이글거리는 태양을 묵묵히 이겨내야만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하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거스를 줄 모르니 농부들은 매일 저녁 일기 예보에 귀 기울인다. 자연이 가르쳐준 위대한 교훈에 따라 농부들은 볕에 감사하고 바람에 감사하고 비에 감사한다. 농부는 자기 앞에 가시덤불이 있다고 씨를 뿌리지 않고 멈춰서고 포기하지 않는다. 가시에 찔려 아프고 힘들어도 길을 내고 물꼬를 내고 땅을 갈면서 열매를 얻고자 모든 땀을 쏟는다. 폭풍으로 논의 벼들이 쓰러져 있고, 밭에 있는 농작물이 파헤쳐지면 농부의 애타는 심정이야 그냥 땅에 주저앉고 싶지만, 그렇게 쓰러진 벼와 농작물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나 애처로워 그 비바람 속에서도 다시 세워주고 배수로를 다시 만들고 새로운 지지대를 만들어주면서 내일의 풍성한 수확을 꿈꾼다. 농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농부는 식물은 괴롭힘을 당하면 그것에 반발하여 더 억세게 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리는 겨울에 보리밟기를 해서 일부러 괴롭혀주면 오히려 더 잘 자란다. 고구마의 덩굴은 땅위를 기어가듯 뻗어 나가는데, 성장기인 여름에 줄기를 모두 뒤집어주어야 한다. 불쌍하지만 그렇게 해야 쓸데없는 뿌리가 생기지 않아 더 크고 실한 고구마를 얻을 수 있다. 시인(장석주)은 ‘대추 한 알’에서 바로 그 고통을 느낀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농사의 농(農)자는 별 신(辰)자에 노래 곡(曲)자가 합쳐진 글자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별의 노래’라는 뜻으로 곧 농사란 하늘의 기운에 따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아주 작은 한 알의 씨앗이 땅의 기운으로 싹을 틔우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에 겸허해진다. 농부의 위대성은 많은 수확량에 있지 않다. 오히려 땅 속 깊이 씨앗을 파묻어 버릴 줄 아는 그 마음에 있다. 오늘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마음을 주는 그 정성스러움에 있다.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는 허황된 기대를 갖지 않으며, 급한 마음으로 열매를 재촉하지도 않는 그 여유로움에 있다. 결국 씨앗이 썩어지고 마는 것을 알지만 그 썩어진 후에 열매 맺을 것도 알기에 땀 흘려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과감히 흙을 덮어버릴 줄 아는 것이 농부의 믿음이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의 가치를 알 뿐 아니라 수고로 얻은 열매의 풍성함도 알고, 열매 맺게 하는 자연의 은혜도 아는 것이 농부의 지혜요 인생철학이다. 횡재를 맛보지는 못하지만 수고한 만큼 얻는 기쁨을 알기에 그의 마음은 정직하고, 겸손한 인격을 가진다. 오랜 기다림에 절망하지 않고, 추운 겨울에도 또 다시 씨를 뿌리게 될 것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마음에 농부의 참된 소망과 안식이 있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세상사를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가 더욱 주목하고 되새겨야 할 마음은 여름 폭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가을의 풍성함을 기다릴 줄 아는 소박한 농부의 마음이다.

마음은 흙과 같아서 마음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마음에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콩을 심고 팥을 추수하려고 하면 힘이 들고 땀이 난다. 그러나 팥을 심고 팥을 추수하는 것은 즐겁고 감사가 넘치게 된다. 자기 마음의 농부가 되어서 좋은 씨를 심으면 좋은 삶이 추수가 되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경작을 한다. 종사하는 분야에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피땀을 흘려서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 밭을 잘 경작하고 있는지 늘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씨를 심고 결실을 거두는 한 주기를 한 평생으로 본다면 지금이 농사일의 어느 시점에 이르렀는지 돌아보고, 한 해를 시작할 때 올해의 농사에 대해 목표를 설정하였다면 그 목표의 어느 부분에 이르렀는지 점검하여야 한다. 그래야 마음 밭을 가꾸면서 최상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몽사상가 제임스 알렌은 “인간의 마음은 정원과 같다. 그것은 지적으로 경작되기도 하고 방임되기도 하는데, 거기서는 어떤 경우든 반드시 무언가가 생산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정원에 아름다운 화초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그곳에 결국 잡초 씨앗이 무수히 떨어져 잡초만 무성한 수풀이 되고 말 것이다. 훌륭한 정원사는 정원을 경작하고 잡초를 뽑고 아름다운 화초의 씨앗을 뿌린 뒤 그것을 열심히 키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스스로 마음의 정원을 일구어 거기서 불순하고 그릇된 생각을 뽑아내고 맑고 올바른 생각을 심어서 잘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농부는 인생의 너른 논과 밭에 농심을 심고, 소중히 가꾼다. 마음속에 선한 생각을 품으면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생각을 품으면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라는 정원에 잡초를 뽑고 자신이 바라는 아름다운 화초의 씨앗을 뿌린 뒤 정성껏 물을 주고 비료를 쳐서 관리한다. “토지를 경작하는 자가 가장 가치 있는 시민이다. 그들은 강건하며, 가장 독립심이 풍부하고, 가장 덕에 뛰어나 있다”(토마스 제퍼슨). 농부가 일군 땅은 우리를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농부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갈고 경작해보자. 농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우뚝 서자. 농심은 한결같다. 농심은 천심이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