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다는 것

권상진
 

읽던 책을 쉬어 갈 때
페이지를 반듯하게 접는 버릇이 있다
접혀진 자국이 경계같이 선명하다

한 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우리의 페이지 속에는 가득하다

[프로필]
권상진 : 볼륨 동인, 전태일 문학상, 복숭아 문학상, 시집[눈물 이후]

[시 감상]
살다 보면 잠시 접어 두거나 접어야 할 때가 있다. 접는다는 것은 멈춤이 아니다. 잠시라는 말과 동행해야 한다. 접어 둔 그 자리에서, 어쩌면 삶의 경계가 되는 그 지점에서 또 다른 출발을 함유한 지도 모른다. 어제는 틀리고 오늘은 맞는, 그런 가을이 되면 좋겠다. 반성 속에서 시작하는 것이 출발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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