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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양반과 돈 <94>

다음 날 아침. 양반 상인은 나를 데리고 국밥집에 가서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거래처인 종로 육주비전으로 가고 저는 행수와의 약속대로 충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배에 올라탔습니다.

“오늘 들려 드릴 말은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시골의 현감으로 있다가 서울로 올라온 분이 있었습니다. 가쾌를 통해 가격에 맞는 집을 찾다가 마침 현감 발령이 나서 집을 팔려는 양반이 있어 매매가 수월했습니다. 아담한 집을 은 서른 냥을 주고 사서 몇 년간 잘 살았습니다. 벼슬이 높아져 군수 발령이 나자 집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쾌가 집값이 올랐다고 사십 냥을 가져온 것입니다.”

가쾌는 복덕방 아니 부동산중개업자이지요. 제 말에 상인들은 이상한 말을 다 듣겠다는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열 냥이나 더 받았으면 땡잡은 것 아닙니까.

“군수님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먼젓번에 자기에게 집을 판 양반을 찾아 나섰습니다. 가쾌를 통해 알아보니 서울로 올라와 교리 벼슬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 냥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돈을 건네주는 것입니다.”

교리는 펄쩍 뛰며 이미 판 집에서 이득이 생겼다고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고 되돌려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다가 가쾌가 중재에 나서 열 냥을 빈민들의 토막집을 수리하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제 말에 상인들은 약간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집을 사서 가격이 오른 것은 순전히 자기 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어떤 높은 벼슬을 한 분들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박씨 성은 가진 양반 부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생계와 두 아들을 키우려고 삯바느질을 했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자 낡은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난리를 만난 이후에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아 가까운 친척이 싸게 내놓았다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후 가쾌를 찾아가 집을 물리기로 했습니다. 가쾌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끝내 답을 하지 않고 이사했습니다. 다시 이사한 집에서 두 아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가더니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리고 환갑이 되던 해에 수없이 많은 축하객에 둘러싸여 있던 마님은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너희가 과거에 급제해 오늘의 영광을 얻은 것은 그 집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에 아들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내가 기와집으로 이사해서 방에 불을 때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단다. 오랫동안 빈집이어서 그런지 화덕에 불이 잘 붙지 않더구나.”

말린 나뭇가지를 불에 던지며 후후 불었지만, 자꾸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재가 잔뜩 쌓여서 그런가 보다 하고 부삽으로 긁어내는데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리 단지의 윗부분이 나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에 걸쳐 구리 단지 두 개를 꺼냈습니다. 겉은 자갈이 깔렸는데 그것을 치우자 놀랍게도 금화가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금화를 보는 순간 내 마음에서 욕심이 생겼지만, 눈을 감고 찬찬히 생각하니 내게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화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 덮고 이사를 한 것이야. ”

갑자기 돈이 생기면 가난함을 벗어나 안락하게 살 것이고 그러면 두 아들은 공부에 전념하지 못할 거라 판단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으시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때로 돈이 복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화를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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