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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진실한 친구 <89>

끝내 토정 선생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나도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어죽을 먹은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가문돌이 해 준 아침밥을 먹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백마도에는 그 이름에 맞게 눈처럼 흰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가문돌이 손짓 발짓으로 나와 대화를 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 나는 그냥 웃기만 하고 가문돌이 가져온 배를 탔습니다. 노를 저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내는 배 안에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내 능력, 저승세계에서 되돌아와 돌미륵에 깃든 스승 토정 선생, 내 첫사랑 도야지의 환생이 분명한 김포병원 의사 김우희, 미래를 내다보는 불온자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염라대왕인 염포교. 복잡하고 어지러워 물만 바라보는데 목적지인 마포포구에 도착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동네이면서 뱃길을 통해 전국에서 모여든 장사꾼들로 그득한 곳입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객주의 주인이 반갑게 저를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객주에 묵고 있는 상인들에게 친구와 우정에 얽힌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상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신용입니까요.

“어떤 시전 상인에게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집이 부유했기에 술과 놀이로 친구들을 사귀며 다녔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걱정했습니다.”

돈을 많이 쓰는 것은 염려하지 않으나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하인을 시켜 커다란 돼지 한 마리를 잡으라고 하곤 친구들과 놀다 저녁에 들어온 아들을 불렀습니다.

“애야, 네가 사귀는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아버지가 묻자 아들은 자랑합니다. 그가 사귀는 이들은 평생 변하지 않는 우정을 보이는 진실한 친구들이라고.

“그러냐? 그럼, 나하고 내기를 하자. 네 친구 중의 한 명이라도 진실한 친구가 있으면 내가 너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 것이다.”

그러자 아들은 호기롭게 승낙했습니다. 아버지는 죽은 돼지를 가마니에 둘둘 싸서 지게에 얹고는 아들을 앞세워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아들이 문밖에서 말합니다.

“이보게, 내가 큰일을 저질렀네. 말다툼 끝에 그만 사람을 죽이고 말았네. 내가 시체를 몰래 땅에 파묻으려 하니 나를 도와주게.”

아들은 아버지가 시킨 대로 제일 친한 친구에게 부탁했으나 친구는 핑계를 대고는 대문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낭패를 당한 아들은 다음으로 친한 친구를 찾아갔으나 역시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다음 친구도, 그다음 친구도. 열 명이나 되는 친구들에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썩 사라지지 않으면 포도청에 알리겠다고 위협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배신당한 분함에 눈물을 흘리는 아들의 지게를 대신 진 아버지는 자기 친구의 집으로 갔습니다. 아들과 똑같은 부탁을 하자 친구는 얼른 아버지를 집안에 들게 했습니다.

“무슨 사정으로 사람을 죽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내일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시체를 뒷산에 파묻기로 하세. 우선 놀랐을 테니 내 방에서 술이나 같이 하세.”

하고는 친구는 아버지를 방에 들여와 술을 대접했습니다. 아들이 그의 모습을 보니 꾸밈이 없었습니다. 밤새 술을 마신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습니다. 친구가 지게를 지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버지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밖에서 동정을 살피고 있던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아, 보았느냐? 이것이 내 친구의 모습이다.”

그제야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날 아침 친구의 집에서는 한 마리의 돼지를 안주로 해서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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