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포시 여성 경제인 협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전창옥(全昌玉) 회장님은 팔순을 넘기셨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연세를 물어보면 이렇게 답하신다.“오팔(58)개띠입니다”. 연세에 비해 젊으신 그래서 지금도 빨강색 원색 니트가 잘 어울리시는 그 분의 젊음 비결은 소통과 유머 그리고 위트에서 나온 듯 싶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58년 개띠를 운운하시는 것은 아직 마음 속 나이는 스무살 아래인 개띠에 머물고 싶은 바램이 있을 것이다. 벼는 익어가면서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주름살이 늘고 흰머리가 나거나 머리가 빠지거나하는 등의 외적인 변화보다 공감능력과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는 내적인 변화를 보면 “우린 늙는 게 아니고 조금씩 익어간다”는 가수 노사연의 ‘바램’이란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 58년 개띠생(戊戌生)들이 올해 환갑을 맞았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김포 지역 사회에서의 58년 개띠 모임은 띠동갑 모임의 원조다. 77년도에 고교를 졸업한 개띠들이라서‘77회’란 이름으로 58년 개띠 모임이 띠별로는 처음 결성되어 매년 정기적으로 읍,면,동별 체육대회를 열어 가면서 단합과 우정을 나누고 있다. 또한 정기모임을 통해 애경사를 함께하는 상부상조가 모범적으로 알차게 이어 지면서 그 후‘57정유회,김포육공회,김포금토끼회’등 띠동갑의 모임이 속속 늘어나 현재는 다양한 동갑내기 모임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소설가 은희경씨가 오래 전에 발표한 소설 ‘마이너리그’를 보면 ‘58년 개띠’가 자주 등장한다. 개띠 동창생 남자 네 명을 주인공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삶의 심오한 윤리를 경쾌하게 들춰낸 소설 속 58년 개띠는 제목처럼 마이너리그. 다시 말해 우리사회의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소설속에서는 58년 개띠 고교동창생들이 8~90년대를 관통하며 겪는 실패와 좌절을 통해 우리사회에 만연한 허위의식, 즉 패거리주의,학벌주의,지역연고주의,남성우월주의를 폭로 한다. 그러면서 세파에 흔들리며 좌충우돌식으로 살아온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인생유전을 통렬하고 재미있게 묘사했다.

58년 개띠라는 말이 언제부터 우리사회에서 통용됐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10년 또는 30년 단위로 세월을 잘라 특징을 부여하는 ‘신,구세대’라는 말은 있지만 특정 연도에 태어난 사람군(群)을 지칭하는 말이 통용된 예는 없다. 58년 개띠는 학교나 사회 어디를 가나 동년배가 유별스레 많아서 다른 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혹독한 경쟁을 해왔다. 그래서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은 크게 성공한 반면에, 낙오된 사람은 경쟁력이 약화되어서 더 어려운 삶을 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연령대이기도 하다. 58년 개띠들은 77년도 대입시험에서는 해방이후 최고로 많이 응시해서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나타냈고, 2년 후인 79년에는 10ㆍ26사건으로 유신정권이 몰락했고, 90년에는 ‘서울의 봄’과 5ㆍ18민주화운동이라는 격변기를 직접 눈으로 몸으로 경험하기도 했다. 피가 끓는 젊은 청년시절에 정치적, 사회적 격변을 직접 몸으로 부딪힌 특이한 세대다.

그래서 58년 개띠에 숨어있는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58년 개띠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 중 하나는 이들이 서울,부산등 대도시 평준화 첫 세대라는 점일 것이다. 이른바 ‘뺑뺑이’로 학교에 들어 간 첫‘수혜자’인 셈인데, 당시 고교입시가 없어진 것은 대통령 아들 때문이라는 입소문이 파다했다. 말하자면 58년 개띠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평준화 세대가 된 첫 번째 케이스가 된 셈이다. “한 번도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한 불행한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던 것이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58년 개띠는 전후(戰後)베이비붐 세대의 아이콘이기도하다. 여기에 수수께끼를 푸는 또 하나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어디를 가나 사람에 치이는 일은 우리들이 태어날 때부터 숙명이었다”고 소설가 은희경씨는 묘사한다. 1960년 전국의 모든 가구를 조사한 ‘인구 센서스’에서 58년 개띠생은 101만명으로, 57년생이나 56년생의 90만명보다 엄청 많은 숫자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한해에 태어나는 신생아수가 30만명이하로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를 기록 중에 있어 미래의 재앙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6~70년대 산아제한의 일환으로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1가정 1자녀를 적극 권장하는 가족계획을 국가 정책사업으로 추진하던 일들이 지금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다. 또 다른 특징은 58년 개띠가 흔히 ‘구세대’의 상징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개띠 동호회를 검색해보니, 80년대에 혼령기 여성들 사이에서 58년 개띠는 나이 많은 노총각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58년 개띠는 고집 세고 억척같은 사람, 그러나 의리있고 인정있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특히 58년 개띠들은 유신에서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에 학창시절을 보냈고, 직장 초년생으로 민주화의 중심인 6ㆍ29를 맞았으며, IMF때는 직장에서 애매한 중간관리자로 정리 해고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세대들이다. 이들이 관통해 온 세월 속에는 이처럼 한국적 근대경험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거품붕괴로 인한 구조조정의 풍파까지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 이들이 정확히 60년을 살고 있고 2018년 현재 살아있는 58년 개띠는 76만여명,이 중에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를 빼고 약 34만여명의 58년 개띠가 올해 마지막으로 임금(년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사회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허리세대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이제는 손주를 무릎에 앉혀 놓고 지난날의 추억담을 전설의 고향식으로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다.

“58년 개띠생 여러분. 환갑을 축하합니다. 화이팅!!” 희노애락 인생의 한 갑자를 돌아 와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58년 개띠생들의 애환과 지나온 삶이 이들을 위한 만가(輓歌)가 아닌 응원가(應援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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