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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곶감과 원로(元老)

서울에서 지인의 결혼식을 보고 나서 참으로 오랫만에 서점(書店)을 찾았다.
서점의 가장 중요한 자리는 언제나 그렇듯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들이 고객 맞을 준비에 부산을 떤다. 하지만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서가의 한구석에는 이미 고객들의 시선과 유행에서 멀어진 수많은 책들이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점원조차 그 책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한 권의 책을 찾았다.
이미 타개한 수필가 윤오영의 ‘곶감과 수필’이다.

엎드려서 책장을 넘기다가 자세는 곧 책상다리로 바뀌었고 결국 책상 앞에서 정좌를 하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그동안 이 책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의 아둔함을 수없이 질책하면서 마지막 장을 넘길때 물밀듯이 밀려드는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화려한 언어의 유희도 없고 그저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 이었지만 그 책으로 인해 새삼 독서의 즐거운 묘미를 느끼게 했다.
“봄은 아껴 날마다 까득까득 취했더니 깨고 보매 옷자락엔 술자욱이 남았고나”삼촌행락도 간 데 없고, 옷자락에 떨어진 두어 방울의 주흔! 이것이 인생의 반점이요, 행로의 기록이다. 이 반점이 곧 수필이다. 이것이 인생의 음미다.(p.149)

윤오영의 수필에는‘자유로움’이 있다. 자유롭다는 말은 고전 문장의 일체의 규격과 제한된 사상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수필을 곶감에 비유했나 보다. 곶감을 만들려면 먼저 감의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좋은 글이 되려면 먼저 문장의 기교를 벗겨야 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그 다음엔 시득시득하게 말린다.

그러면 그 속에 있는 당분이 겉으로 들어난다. 만일 덜 익거나 상했으면 시설(곶감이 되어가는 과정에 수분과 함께 떫은 맛이 없어지면서 감 표면에 하얀가루가 생김.‘시상’이라고도 함)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글쓰는 이의 개성을 말한다. 감은 오래 가지 못하지만 곶감은 오래 간다.
수필을‘그저 붓 가는대로 쓴 글’이라고 배웠던 터이지만 이 책은 그저 붓 가는대로 쓴 것이 모두 수필이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수필에는 형식이 없어 누구나 쓸 수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수필 속에는 인생을 돌이켜 볼 수 있는‘관조(觀照)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수필의 본래 의미를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연륜도 필요하고 속된 말로 인생에 도가 터야 하는 것이다. 수필을 쓰려면 적어도 인생 오십이 넘어야 한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감이 곶감으로 가는 과정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듯이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다.

햇빛 찬란한 희망 속에 발전을 구가하는 것이 영원해야 하지만 사는 게 다 그럴 수 없는 것이니 어렵고 힘들고 이겨내야 할 시련을 겪게 된다.
세상 참 복잡하게 돌아간다. 사회 기강이 이미 무너져 내렸다는 탄식의 소리가 벌써 오래 전부터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는 아마도 근 20여년전에 겪었던 IMF 이후부터인 듯하다.
오랜 기간 동안 된서리를 맞은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아귀를 맞추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겉돈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모두가 아우성이다. 실업률이 고공행진인데 정작 생산 현장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힘들거나 지저분한 일을 하는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하고 공사 현장에서는 기능 인력을 웃돈 주고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자영업자들 그리고 소상공인들은 가뜩이나 경기가 불황인데 최저 인건비마저 인상되고,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어 더 어렵다고 하소연이다.

대학을 나와 백수로 사는 청년들은 대기업이나 사무직을 선호한다. 이러는 사이에 이들 생산 현장의 인력은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들이 차지해 버린 지 벌써 오래다.
일본의 경우 이미 20여년 전에 우리처럼 이러한 전철을 겪었으나 지금은 청년들의 구직과 인력의 배분이 조화롭게 잘 진행되는 순환 구조라고 한다.
감이 곶감이 되는 과정에는 순서가 있듯이 기본적인 인성의 바탕 위에 작은 일에서 부터 접근해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가는 길은 어떨까 싶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젊은 청년 인재들이 당장은 원하는 대기업에 들어가기가 어렵더라도 생산 현장에서 기본을 배우고, 겪어가면서 그 체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일에 접근하는 그런 과정도 길게 보면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대기업에 취직 못해 실패한 인생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액세서리들이 거추장스럽다”며 이 땅을 떠나는 이민자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한 번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꾸어 보자고 그들의 이국행을 나서서 막는 사람들은 없다. ‘태어난 나라를 등지면 어떡하냐’고, ‘정신 나간 것들’이라며 준엄하게 꾸짖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우리의 기성세대가, 원로가 우리 사회에 스스로의 부끄러움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서서 호소하고 일침을 가하는 큰 목소리를 내려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되는,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원로(元老)가 분명 필요하다.

한 때는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고 신문에도 촌철살인 컬럼으로 유명했던 저명한 원로 대학교수마저 최근에는 두문불출이다.
또한 영원한 사표로 원로로서 추앙받던 타계하신 김수환 추기경 같으신 성직자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구속 수감 중인 마당에 누굴 탓하랴 싶긴 하다.
누군가가 쓴 소리 옳은 소리를 해대도 속 깊게 들으려 이해하려하지 않으려는 우리사회인데 누가 나서려고 할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 중심축이 되는 원로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들의 마음이 겸허해지고 그래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못 배기게 만들 원로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하다.
스스로 화려한 치장을 하고 마치 권력의 지배자에게 발탁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뿐이다.
존경 받지 못하는 전직 대통령들, 한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먹탕질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정권에 잘 보여 한자리라도 차지하려고 발버둥치다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먹는 사람들...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애꿎은 국민들이 쓰라린 고통을 맛보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인생을 관조하면서 잘못 가는 길을 바로 잡아 주는 혜량과 덕망을 갖고 있는 원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곶감’처럼 어디에선가 뽀얀 시설을 쓰고 숨어 있는 것인가?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이제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상실당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존경받는 원로가 있어서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을 꾸짖어준다면 희망의 불씨가 될 것이다.
무릎을 꿇고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들으며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어 줄 그런 원로가 지금 너무 그립다.

우리사회에 잘 숙성되어 맛스런 곶감처럼 시원스럽게 마음과 자유를 느끼게 해주어 그래서 시민 모두가 희망과 비전을 갖도록 힘이 되어줄 그런 원로(元老)가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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