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

풍무동 집 근처에‘장릉(章陵)’이 있다.
장릉은 사적 제202호로 조선 제16대 인조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조선21대 영조와 22대 정조가 매년 행차하여 제사를 지내던 재실 등이 있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김포가 고향인지라 장릉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시절까지 매년 봄,가을 단골로 가던 소풍 장소다. 시청 뒤에 위치한 장릉은 김포평야인 홍도평(鴻島坪) 다음으로 김포를 상징하는 대표 지명이다. 164미터 높이의 장릉산은 1956년도부터 정상에는 군용 미사일 기지가 있어 미군이 주둔했다. 전기가 들어 온지 얼마 안된 때인데도 장릉산 정상 주변에는 밤새도록 휘황찬란한 경계용 불빛이 김포 시내를 훤히 밝힐 정도였다. 또한 서변리쪽에는 80년대까지 벤춰스클럽,오십야드등 미군 전용 주점이 성행하기도 했다. 1984년도에는 정상의 기지 주변에 매설된 지뢰가 폭우에 의한 산사태로 인해 급기야 14명이 사망하는 인명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던 곳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함께해온 장릉이다.

운동삼아 지금은 휴일을 이용해 가끔 아내와 장릉을 찾아 호젓한 오솔길을 걸으며 장릉의 역사는 물론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장릉의 사계를 피부로 느끼곤 한다. 어떤 때는 먼 거리는 아니지만 차량을 이용해 가기도 한다. 언젠가 주말에 아내를 태우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50대로 보이는 여성 한분이 내가 가고자하는 ‘장릉이 어디냐?’고 묻는다. 일행이 한분 더 계셔서 두 분의 중년 여성을 태우고 갔다. 차에 타고는 너무 과하게 고맙다는 말을 거듭한다. 나야 어차피 가는 길에 좋은 일을 하게 된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거리인지라 곧 목적지인 장릉에 도착했다. 한 분이 내리시면서 “아이고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거예요~”하시기에, “아유 뭘요? 어차피 여기 오던 길이 였는데요 뭐!!”이러며 덕담을 주고 받던 차에 다른 한 분이 “그래도 어떻게 공짜로 타? 택시비라 생각하고 받아요!”하며 5천원 한 장을 조수석에 던진다. 두 세번의 실랑이 끝에 어렵게 그 분께 돌려 드렸다. 마음이 좀 씁쓸하다. 그저 덕담을 주고 받으며 내렸으면 마음 편하고 좋았을 것을...

생각이 복잡하다. 우리는 어쩌다 이리 사소한 친절도 주고 받기 불편한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만약 내가 그 5천원을 받았다면 나의 행위는 더 이상 친절이 아니다. 거래로 변질된다. 그 분들도 처음에는 고마워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곧 신세진 것 같은 불편함이 되었고, 5천원을 지불함으로써 그 불편함을 털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일상에서 소소한 친절과 호의, 나눔을 주기도 받기도 힘든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공동체지수가 꼴찌인 대한민국의 민낯인 듯해 마음이 편치 않다. 과거 인간의 선의와 공동체 관계망속에서 호혜적으로 주고 받던 친절,호의,나눔은 이제 서비스산업이라는 미명하에 거의 모든 것들이 상품화되었다. 이제는 그저 서로의 필요를 경제적으로 교환하는 거래일 뿐이다.

물론 낯선 이의 친절을 마냥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알게 모르게 원가에 포함된 감정노동자의 과하거나 영혼없는 친절은 서글프거나 부담스럽거나 불편하다.‘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듯이 이유 없는 친절에는 대부분 무엇인가 목적이 숨어 있다. 그 숨은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신뢰를 상실한 우리 사회는 사소한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시장에서 소비해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그것이 경제라고 우긴다.

선의는 교환이 아니라 흘러야 한다. 돈이나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없는 사람에게,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젊은 사람이 어르신에게, 장년이 청년에게 흘려 보내야 한다. 지금 선의를 제공 받은 사람은 나중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의를 흘려 보내야 한다. 갚지 못한들 어떠랴, 베푸는 사람도 기꺼이 한 일이니 좋고, 누군가는 그 선의를 통해 어려움을 넘겼으니 고마운 것이다. 서로가 좋은 것이다. 지금은 내가 베풀었으니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수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미덕이고,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 코앞에 다가온 초고령사회,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누구나 더 이상 혼자서는 지낼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그리고 시장화된 사회 서비스도 공공 복지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이 우리사회에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제 경제만 성장하면, 부자가 되면, 모든 게 좋아질 것 이라는 믿음을 그만 거두어들이자.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자. 작고 소소한 도움일지라도 용기를 내어 서로 주고 받자. 그러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이웃을 되찾을 수 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라는 자산을 축적하여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신세를 지고 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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