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뱀이 된 젊은 스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갑자기 우울해졌습니다. 도야지 아씨에 대한 그리움이 내가 나이 오십이 되도록 숫총각으로 산 제 처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내년에 왜란이 일어나면 나는 왜군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조헌 선생 같은 분은 순국한 분이니 금산에서 죽은 것이 기록되겠지만, 미천한 재담꾼은 어디서 죽었는지 기억해주는 이 없을 겁니다. 나도 모르게 최진사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집 하인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합니다.

“아 참, 깜빡했습니다. 미륵은 열흘 전 백마도로 옮겼습니다.”
내가 재담하러 간 사이에 옮긴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을 피해 옮겼다고 하기에 나는 발걸음을 백마도로 향했습니다. 토정 선생은 살아계실 때도 이인(異人)이었는데 죽어서도 남다른 분입니다. 어쩌면 나와 안동으로 간 양동이도 몇백 년 후의 세상에서 온 김우희 의사도 이인일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백마도로 들어간 것은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방문에 가문돌은 어죽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낚싯대를 갖고 나갔습니다. 토정 선생 아니 미륵불께서는 제가 김우희를 만났는가 묻길래 모두 말씀드리고 이곳에 나타나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래, 내가 그렇게 하지. 세상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알아들을까?”
“모르겠지요. 현재와 미래를 연결되었다는 것을. 저는 선생님이 가신 저승세계가 궁금합니다.”
“저승은 무슨? 들어가지도 못하고 설공찬이 도망치는 바람에 이 꼴인데.”
선생은 그리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습니다. 남보다 몇 발 앞서 가는 분이기에 저승세계에 대한 것을 비밀에 부치는 것일 것입니다. 토정비결도 세상이 어수선해 사람들이 점에 의존하니 각자 마음먹은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에서 만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내 마음을 읽으셨나 봅니다.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뭐 한마디 해줄 수는 있어. 나 하고 같이 저승세계로 가던 친구인데……”
죽은 사람은 부자 양반이었는데 학문탐구나 과거 시험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공부를 어느 정도 했으면 역학을 공부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기에 무슨 일든 점쟁이를 찾았답니다. 이사 갈 때, 집수리할 때, 먼 길 떠날 때, 자식들 시집 장가보낼 때 등등. 무당집, 판수, 사주쟁이, 관상쟁이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일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용한 풍수쟁이를 데리고 남몰래 선산을 둘러보게 했습니다.

“여깁니다. 이곳에 명당을 쓰면 자손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고 부유하게 살 것입니다.”
풍수쟁이는 침을 튀기며 자랑을 했습니다. 양반은 흐뭇했습니다. 맨 위에 조상을 모시고 차례로 묘를 쓰는데 그 명당자리가 바로 자신이 묻힐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자신이 그 명당에 묻힐 꿈만 꾸었습니다. 그의 아들과 손자가 높은 벼슬에 올라가면 자신도 증직으로 높은 벼슬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촌 형이 봄나들이 갔다가 산 위에서 미끄러져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사촌 형의 안부보다 명당자리를 빼앗길 것을 걱정했습니다.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했습니다.

“안 되겠다,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는 사람을 시켜 은밀히 비상을 구해왔습니다. 비상은 사약의 재료로 먹으면 내장이 뒤틀리고 피를 토하며 죽는 독약입니다. 그는 사촌 형이 죽기 전에 약을 입에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그래. 어찌 되었습니까? 명당에 묻혔겠군요.”
“소원은 성취했는데 저승 세계에서 자살은 살인이라 호된 벌을 받고 있더……”
선생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다물었습니다. 저승은 가보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었으니까요. 마침 가문돌이 물고기를 잡고 들어와 이야기가 중단되었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