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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중봉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 수필

<우수상>

우수상수상자 양자영씨

아이들의 질문

양자영

 

두 아이를 데리고 칠백의총을 찾았다. 날씨가 맑은 4월의 토요일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단체 견학으로 칠백의총에 와 본 적이 있다는 일곱 살 큰 아이는, “여기 와 본 적 있어!” 하고 소리치며 연못을 향해 달려간다. 맑은 연못에는 큰 잉어와 붕어들이 인기척을 따라 주둥이를 뻐끔거리며 모습을 드러내서 아이들을 흥분시킨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잠시 연못 주위를 걸어보았다. 금산으로 이사 온지 몇 년이 지나도록 칠백의총 표지판만 보고 지나칠 뿐 들어와 보지는 못했다. 칠백의총 안의 풀과 나무들이 너무나 기품있게 가꾸어져 있어서 나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4월의 자연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칠백의총의 정원은 특히나 아름다웠다. 의총문 앞에서 수줍은 연분홍 꽃을 매달고 있는 큰 모과나무의 자태에 경탄하고 의총의 좌우를 지키고 있는 자목련 두 그루 앞에서는 오래도록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보기 힘든 잘생긴 자목련 나무의 몸피와 꽃송이의 고운 빛깔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데,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엄마, 여기는 누구 무덤이야?”

“응... 여기는 옛날 옛적에 우리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훌륭하신 분들의 무덤이야.”

다섯 살, 일곱 살인 아이들에게 의병이니, 왜적이니 하는 개념을 설명하기 힘들 것 같아서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다섯 살 아들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무덤을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어?”

“음... 여기는 아주 훌륭한 분들의 무덤이기 때문에 크게 만든 거야. 그리고 여기는 칠백 분이나 되는 많은 분들을 모신 무덤이라서 큰 거야.”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된 거야?”

일곱 살 큰 아이의 이 질문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아직 국가나 민족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전쟁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아이들은 어느새 고민하는 나를 앞질러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목에 기념관이 나타나자 아이들은 어느새 아빠와 함께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가보니 아이들은 중봉 선생의 초상화를 지나쳐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를 재현해 놓은 모형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실감나는 전투 장면을 진지하게 살펴보던 큰 아이가 다시 묻는다.

“엄마, 왜 이렇게 많이 싸우고 있는 거야? 누가 이겼어?”

나는 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는데, 갈 곳 잃은 내 눈에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의 왜병과 싸우기 위해 넘어오는 의병들의 모습을 그린 기록화 한 점이 들어왔다. 그 그림을 보고 있는데, 울컥하고 목젖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중봉 선생과 의병들은 어렵사리 청주성 전투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청주성을 되찾느라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왜군과 싸우기 위해 먼 길을 걸어 금산으로 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곧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그들이 걸어 넘어오는 그림 속 고갯마루와 뒷배경의 산이 어쩐지 낯이 익은 듯 느껴진다. 내가 아이들을 태우고 자동차로 늘 지나다니는 그 길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아들의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중봉 선생을 위시한 수백의 의병들은 왜 싸움에 나섰을까. 그들은 저 고개을 넘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패배와 죽음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로 하여금 기꺼이 저 고개를 넘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서 구한말 시골 선비였던 이동진이 망해가는 조선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널 결심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동진의 친구였던 최치수가 그의 결심을 비웃으며 이동진에게 묻는다. 대체 무엇을 위해 처자식을 버리고 국경을 건너가려 하느냐고? 썩어빠진 왕조? 무능력한 왕? 백성? 대체 무엇을 위해? 그때 이동진의 대답은 무엇이었던가, 이동진은 침묵 끝에 이런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굳이 대답하자면 이 산천을 위해서라고 해두자고.

내가 그 장면을 기억하는 것은 소설 속 이동진의 결심이 저 기록화 속 의병들의 발걸음과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금산으로 향하는 의병들의 발걸음에는 그것이 어떤 명분이든, 어떤 가치이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기꺼이 일어서 행동하는 자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제대로 된 전투복도 없이 변변한 무기도 없이 전장으로 나아가는 의병의 대열들이 초라하지 않고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나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좇아 목숨조차 버릴 수 있는 그들에게 어떤 부러움조차 느끼고 있었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쩌면 내 상상보다 훨씬 근사한 나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기록화 앞에 서서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들은 어느새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따라 기념관 밖으로 나서니 실내의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에 사월의 햇살이 더욱 눈부시게 느껴진다. 햇살뿐이랴. 나뭇잎 하나하나, 잔디 위에 떨어진 꽃잎들, 연못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도 모두 눈이 부셨다.

나는 아이들을 뒤따라 걸어가며 이제는 어쩐지 아이의 질문에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사람이란, 자신이 소중하다고 믿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사백년 전에도 그런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다시 연못가에 앉아서 물고기들과 눈을 맞추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사백여 년 전 금산전투에서 전멸했던 의병들은 죽음을 맞이했으나 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달았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아직도 남아서 나를 가르치고 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백년이 훌쩍 지나도록 끝끝내 승리한 중봉선생과 의병들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본다. 아이들의 미소가 사월의 연두빛처럼 싱그럽다.

 

<당선소감>

 

아이들과 함께 칠백의총을 찾았다가 경험한 일을 글로 썼는데, 서툰 글이 상까지 받게 되었네요.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글솜씨는 부족하지만 글에 담긴 마음이 아이들과 함께 한 순수한 마음이어서 상을 받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시 아이들과 함께 칠백의총에 가게 되면 그곳에 잠드신 의로운 영령들께 마음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느낌이 들까요? 기쁜 마음에 감히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주현 기자  wngus21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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