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우수상 수상자 이미영씨

불망기不忘記

이미영

 

얼어붙은 바람에 물보라가 튀는

모슬포 나루에 배가 옆구리를 댄다

마중 나온 포교가 내민 거친 손이

대정현 검은 하늘같다

 

탱자가시에 둘러싸였어도

봄에 피는 꽃향기가 그만이라며

그가 웃는다

온몸으로 앓았던 곤장 서른여섯 대가 여전히 푸른데

 

냉골인 그의 방이

저고리만 입은 그의 얼골을 닮았다

찢어진 문창지 새로 허옇게 갯바람이 몰려들고

한양에 남은 가족얘기는 그저 시루에 얹어두었다

 

문구멍을 메울 창호지를 당부했는데도

차를 마시러 들른 방은 찢어진 창호문이 그대로

해가 고개를 틀고 시들 때까지 쪽마루에 앉아있던

그의 그림자가 객창에 돌아와서도 떠오른다

구멍은 문창지에만 난 게 아닌 모양이다

 

한양으로 떠나는 내 앞에 그림 한 점이 펼쳐진다

초옥 한 채와 두 그루 소나무,

눈 내린 화폭 안으로

휘어진 백송이 나를 끌어당긴다

창호문 구멍 너머로

그의 손이 내 등허리를 덮는다

그림을 앉힌 창호지가 바람에 펄럭인다

 

<당선소감>

 

그건 아마도 인문학 수업을 듣던 작년 이맘때였을 겁니다. 그 때 들었던 그의 삶이 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제 가슴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시의 단상은 그 때 저에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후로 그가 유배를 갔던 제주도 대정현 검은 대지와 검은 하늘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고 묶인 그의 외로움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살 수도 있었던 수백 권의 귀한 책을 유배 간 스승에게 보내던 한 제자의 마음속을 여러 날 거닐었습니다. 시는 그런 마음들을 그려냈습니다. 시 속에서 그가 그린 세한도를 건네받은 건, 그건 아마도 저인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초라한 종이에 그려진 앙상한 그림일 뿐이었던 백 년의 진실이 그렇게 저에게 다가오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삼 년 동안 소설을 쓰다 다시 시를 잡았습니다. 연민에 사로잡힌 시쓰기가 싫어 시를 떠났는데, 본령이었던 시로 다시 돌아오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겠지요. 지나간 날들을 기꺼이 사랑하겠습니다.

남편은 제가 글을 쓸 때 늘 옆에서 음식을 해주었습니다. 따뜻한 사람, 감사합니다. 시의 치열함을 깨닫게 해주신 권영옥 선생님, 허형만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시를 뽑아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못난 저를 사랑해준 사람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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