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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중봉문학상 대상 수상작

<대상>

맨드라미의 열전

서김상규

 

족보 없는 혈통이 대물림되었다

붉은 수은주 눈금이 체온으로 치솟은

적도의 온도로 한여름이 닥쳤다

 

가문 뿌리에 외줄기 수맥이 끊겼다

갑골문을 새긴 지표 위에서

초록 수액이 마르는 줄기, 타는 녹색 잎

태양의 노략질이 한층 잔인해졌다

 

지열이 물관을 달구는 피돌기로

심장이 비등점 상승으로 끓어오르고

뼈가 삭정이로 잉걸불에 휩싸이듯

 

초본식물로 목숨을 붙이고 사는 게

임진왜란 아닌 때가 있었는가

장례 치르며 대를 이은 호적초본에서

이름을 꽃대로 일으켜 세웠다

 

은빛 별이 빛나는 사막을 걸었다

물병자리에서 물집 잡히며 길어 내린

첫새벽 이슬로 잎줄기를 적셨다

 

탯자리에서 혈족을 지키는 결기로

생명의 제사를 극진히 올리는 꽃자리

중심에 세상 빛이 몰려 꽃을 피웠다

 

족보 없는 의병들이 쓴 열전으로

맨드라미에 높고 낮은 신분이 없다

조헌 선생이 지부상소*를 올릴 때

머리맡에 놓은 붉게 날선 도끼다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 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지니고 올리는 상소

 

<수상소감>

 

봄이 지나는 길목에 수국과 함박꽃이 활짝 피었다. 부처 머리 같은 수국이 화두의 깨우침으로, 함박꽃이 지혜의 웃음으로 난세인 작금을 살아가는 가르침을 준다.

이제 곧 임란 같은 여름이 닥칠 것이다. 태양이 노략질할 때 식물은 광합성 하는 의지로 초록을 녹음으로 물들일 것이다.

이런 때 맨드라미는 피를 달궈 붉은 꽃을 피운다. 땡볕 속에 절정으로 치닫는 붉음은 조헌 선생의 충절을 닮아있다. 그리고 맨몸으로 왜적과 맞선 의병들이 선혈을 흘린 빛깔이다.

맨드라미를 보라. 조헌 선생이 상소를 올릴 때 머리맡에 놓은 도끼이며, 의병들이 굳은살 박인 손아귀에 움켜쥔 도끼 형상이다.

아름다움만이 꽃이 아니다. 감히 목숨을 내놓는 기개로 조헌 선생과 의병들의 강건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품는다.

이번 수상은 나약한 시적 정신에 가하는 채찍질이다. 백척간두에 선 듯 더욱더 치열하게 창작할 것을 명하는 조헌 선생의 준엄한 호령이 아닌가,

부족한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귀한 상을 제정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고귀한 정신을 전파하는 관계자 분들께 진심 어린 머리를 조아린다.

 

김주현 기자  wngus21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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