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모두 존경받는 것은 아닙니다. 신라시대의 스님 중에는 고승도 많이 계시고 고려 때도 몽골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 정도로 불심이 백성들에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고이면 썩는 법입니다. 불교가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속은 부패해서 마침내 정도전을 비롯한 성리학자들이 왜구 토벌에 공이 많은 이성계 장군을 추대해 조선을 개국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고결해야 할 성직자가 돈과 색정에 빠지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 뒤인 한국에서도 교회 목사나 불교의 스님이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이야기는 그런 추잡한 내용과 다른 사랑 이야기입니다. 상사(相思)는 서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저와 도야지 아씨 같은 사이 말입니다. 그런데 한쪽만 사랑한다면 이것이 비극이 되지요. 동네에 시주 나갔던 젊은 중이 어떤 처녀를 보고 한 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안 돼, 나는 부처님을 모시는 중이 아니냐?”
아무리 스스로 꾸짖어도 잊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주지 스님에게 말하려 했으나 엄한 스승의 꾸짖음이 두려웠습니다. 백일 수행을 핑계 대고 절 뒤의 토굴에 들어갔습니다. 중도에 나오지 못하게 돌로 입구를 막고 식구만 빼고 진흙으로 봉했습니다. 스님은 정좌하고 불경을 암송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동자승만 매일 한 끼의 밥만 식구에 들이밀고 가는데 이런 번뇌를 모르는 스님들은 토굴에서 용맹정진하는 젊은 스님을 기특하게 여겼습니다. 백일째 되는 날 아침 동자승은 밥그릇에 밥이 그냥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주지 스님에게 말하자 얼른 토굴로 달려가 진흙과 돌을 치우고 들어갔을 때 차디찬 시신만 발견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병이 든 스님은 남에게 말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 죽은 것이지요. 요즘 세상 아니 훗날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드문 상사병이지요. 그러면 이야기 끝일까요? 아닙니다. 스님은 뱀으로 환생해서 처녀를 찾아갔습니다. 죽어서도 그녀를 향한 사랑은 아니 집착은 끊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처녀는 호롱불 아래에서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뱀은 스르르 처녀의 치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나!”
처녀는 기겁했지만 뱀은 온몸을 칭칭 감고 망측하게도 꼬리는 처녀의 사타구니에 넣고 처녀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뱀이 된 중의 눈빛은 사랑으로 차있겠지만, 노려보는 듯한 뱀눈을 정면으로 보는 처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소름 그 자체였습니다. 처녀의 비명에 집안 식구들이 달려왔습니다. 처녀의 몸에서 뱀을 떼어 내려 했지만 꼼짝도 않고 낫으로 찍어도 베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망측한 자세로 처녀와 한몸이 된 사정은 금세 마을에 알려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뒷산의 절로 달려가서 주지 스님을 모셔왔습니다. 부처님의 법력으로 요사한 뱀을 떼어 내려는 것이지요. 주지 스님은 처녀의 사타구니에 꼬리를 집어놓고 혀를 날름거리는 뱀이 자신의 제자 스님인 것을 금세 알아챘습니다. 뱀이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죠.

“네 이놈! 네가 수행을 한다고 토굴로 들어갔다더니 인제 보니 음행만 저질렀구나!”
스승의 야단에 뱀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러자 주지 스님은 부드럽게 타이르기 시작했습니다. 육체의 사랑은 한바탕 꿈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훈계를 하고는 판자 위에 올라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뱀은 처녀의 놈을 스르르 풀고 판자 위에 올라갔습니다. 주지 스님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강으로 와서 판자를 강 위에 띄우고는 목탁을 치며 불경을 외웠습니다. 한순간의 애욕을 참지 못하고 계율을 어기고 상사뱀이 된 스님은 이렇게 강 밑으로 떠내려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은 스님에 대한 동정심과 함께 집착의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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