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
김포대학교
관광경영과 교수

예전에는 시묘살이를 기이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는 충격이 3년은 지나야 마음의 정리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필자는 어릴 때, 아버지를 졸졸 따라 다녀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곤 했는데, 어머니의 지적은 지금 생각해보면 설득력이 있다.
아버지는 택시운전을 하셨고, 쉬는 날이면 자동차 정비를 하였는데 그때 마다 아버지 옆에 있다가 기름이 묻혀서 오는 아들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필자에게 영웅이었다. 그렇게 건강할 것 같던 아버지는 등산 중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이후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소천하셨다.

필자는 몇 년 前, 아버지와의 제주도 여행을 평생 기억할 것이며 추억으로 남길 것이다.   
필자는 아버지를 많이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것은 교만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멋지고 다정다감하고 진정성 있고 순수하고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박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아버지는 할아버지 묘소를 찾지 못하여 참배를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셨고, 필자로 하여금 친척삼촌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셨다. 어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호텔로 오신 그 삼촌이었기에 오시지 않을 줄 알았는데,  노구의 몸으로  지팡이를 끌고 오시는 게 아닌가?  삼촌 덕분에 할아버지 묘를 찾았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묘소에 참배하셨다.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주신 그 삼촌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만든 아버지의 인간미가 더욱 강하지 않았을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남의 말을 진정으로 들어주시는 아버지...  당신은 가진 게 없어도 남을 위해 도와주시는 아버지..... 본인은 힘들어도 솔선수범해 문제를 풀어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슈퍼스타였다.  

둘째날,  만장굴 관광을 가면서 아버지는 다리가 아파서 동굴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다.
그렇게 건강하셨던 아버지였는데 그 계단을 내려가지 못해 관광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필자는  가슴이 콱 막히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말았다.
아무리 멋진 곳도 누구랑 어떻게 여행하느냐가 중요한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관광의 필수조건 4가지 여유(돈의 여유, 시간의 여유, 몸의 여유, 마음의 여유)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순간이었고,  앞으로 가면서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버지의 몸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아들아! 먼저 가라 빨리 가서 많이 보고 오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천하절경도...... 예전에는 그렇게 멋진 만장굴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렇고 그런 곳에 불과하다니....... 다만 아버지가 건강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던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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