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환공이 당대의 명재상 관중과 대부 습붕을 데리고 고죽국 정벌에 나섰다. 전쟁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봄에 시작된 전쟁은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혹한에 귀국길에 오른 환공은 지름길을 찾다 그만 길을 잃었다. 진퇴양난의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이런 때는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그의 말대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니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길을 찾아 제나라로 돌아오던 병사들은 산길에서 식수가 떨어져 심한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원래 여름에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에는 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고 그 아래를 파보니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노마식도(老馬識途)와 늙은 말의 지혜를 뜻하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고사성어로「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에 음식을 훔쳐 먹는데 귀신이 다된 쥐가 있었다. 그러나 늙으면서부터 차츰 눈이 침침해지고 힘이 부쳐서 더 이상 제 힘으로는 무엇을 훔쳐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젊은 쥐들이 찾아와서 그에게서 훔치는 기술을 배워 그 기술로 훔친 음식물을 나누어 늙은 쥐를 먹여 살렸다.
그렇게 꽤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이 말했다.“이제는 저 늙은 쥐의 기술도 바닥이 나서 우리에게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그리고는 그 뒤로 다시는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았다.

늙은 쥐는 몹시 분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여인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서 솥 속에 넣은 다음 무거운 돌로 뚜껑을 눌러 놓고 밖으로 나갔다.
쥐들은 그 음식을 훔쳐 먹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때 한 쥐가 말했다.“늙은 쥐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모두가“그게 좋겠다.”고 하고는 함께 가서 묘안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늙은 쥐는 화를 발끈 내면서 말했다.“너희들이 나에게서 기술을 배워서 항상 배불리 먹고 살면서도 지금까지 나를 본체만체했으니 괘씸해서라도 말해 줄 수 없다.”쥐들은 모두 절하며 사죄하고 간청했다.“저희들이 죽을죄를 졌습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는 잘 모실테니 방법만 가르쳐 주십시오.”그러자 늙은 쥐가 말했다.“그래, 그렇다면 일러주마. 솥에 발이 세 개 있지? 그 중 하나가 얹혀 있는 곳을 모두 힘을 합쳐서 파내거라. 몇 치 파내려가지 않아 솥은 자연히 그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고 그러면 솥뚜껑은 저절로 벗겨질 것이다.”쥐들이 달려가서 파내려가자 과연 늙은 쥐의 말대로 되었다.

쥐들은 배불리 먹고 돌아오면서 남은 음식을 가져다가 늙은 쥐를 대접했다. 조선중기의 학자 태촌 고상안의 효빈잡기(效嚬雜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노인이 존경받는 사회’가 희망이 있는 사회다. 노인이란 단순히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 육체적인 효용가치가 떨어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삶을 통해 체득한 다양한 지혜와 지식을 우리 사회와 가정을 위해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세상엔 젊음의 패기와 열정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일들이 많은 법이다. 노인에게는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와 경륜이 있다. 중국 속담에‘가유일로 여유일보’(家有一老 如有一寶)라는 말이 있다. 집안에 노인이 있는 것은 보물 하나가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아프리카에도‘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학교나 책이 변변히 없는 아프리카에서 교육은 주로 경험 많은 노인들의 옛이야기나 격언 전설을 통해 이뤄지기에 오랜 인생역정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지혜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비유일 것이다.

누구도 모든 지혜를 품을 순 없다. 누구도 모든 앎을 담을 순 없다. 그러니 지혜는 나누고, 모르는 건 물어야 한다. 늙은 말, 개미는 물론이거니와 늙은 쥐에게서도 배울 게 많은 게 인생이다.
디지털 시대에 노인이 설 자리는 점점 줄고 있지만 노년의 지혜가 빛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진나라 목공도“어른에게 자문을 구하면 잘못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는 생생한 현장의 지혜를 갖춘 노인들이 많다. 세월은 그냥 흘러가버리지 않는다.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쓸모없는 세월은 없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듯 세월이 쌓여 40에는 혹하지 않고(불혹, 不惑), 50에는 하늘의 뜻을 알고(지천명, 知天命), 60에는 순리대로 살게 되고(이순, 耳順), 70에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종심, 從心)되는 것이다. 머물지 않는 세월, 세월은 지혜다.

신광식 
김포대 총동문회장
전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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