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4주기 앞에서
이젠 아이들이 떠날 수 있기를….

 

이상현 
통진중학교 교사

벌써 4주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떠나간 지도….
벚꽃 휘날리는 4월이 되면 ‘세월호’와 함께 떠나 간 단원고 아이들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
물론 직업이 교사라고 하는 특수성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날의 상처가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의 부모는 그 날의 멈춰버린 시계를 원망하며 어쩌면 그날보다 더 큰 아픔과 고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교실에서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얼굴에 단원고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 미안함으로 봄을 맞은 지도 벌써 4년째가 되었다. 믿어지지 않던 그날의 현실 앞에서 아이들에게 마냥 미안한 마음으로 해서 여러 날을 가슴앓이 했던 기억도 아직 남아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었고, 아이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도 새삼 알려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나에게 있어 4월은, 세월호 사건 이전과 후로 나눠질 만큼 그 구분이 분명하다.

벚꽃을 이야기 하던 그 4월은 세월호에 대한 미안함으로 바뀌었고, 어김없이 무거운 마음이 된다. 당시 무엇이라도 해야겠기에 무작정 팽목항에 가서 바다를 보고 울었다. 그리고 돌아와서도 구구절절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절함을 담아 써서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다 메울 수 없는, 밑이 없는 항아리에 물 붓기 같은 심정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또 4월이 되면 많은 어른들이 면피의 목적이든 아니면 사과의 의미이든 상처를 씻어보려 몸서리친다.

최근 하나씩 드러나는 그날의 민낯에 대한 울분이 아니더라도 족히 울분으로 가득한데, 무능으로 일관한 그날의 이야기는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어느 한 소녀가 아이들의 가슴에 차마 달아 주지 못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그려 본 노란 리본은 어느 새 4월이면 여기저기서 그날의 상징이 되었고, 우린 익숙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여전히 ….

어쩌면 아이들은 나름의 어느 순간부터는 그날을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변화의 불씨가 되어 준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할 때도, 어쩌면 아이들은 이제 긴 영면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까닭에 이제 우리도 아이들로 인해 만들어진 사각의 틀로부터 아이들을 놓아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꿈꾸는 그런 곳을 찾아 이제, 홀연히 가기 바란다.

내년 4월엔 아픔의 노란 리본이 하나 둘씩 위로 위로 올라가고 우린 벚꽃길에서 그 리본을 향해 웃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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