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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쉰


                       이영광
 

한 권을 다 읽어도 주인공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러시아 소설처럼
흐릿했지만
쉰이다

남의 살에 더 들어가려고 비아그라를 먹는 늙은 정욕처럼
어지러웠지만
지천명이다

인간이 되지 못해 괴로웠던 때도 있었고
동물이 되지 못해 괴로웠던 때도 있었다
인간도 동물도 되지 못하는 것일 때 나는 가장 괴로웠다

마실 만큼 마신 것 같은데
아직 술이 남았나?
쉰 집으로 말라도 여섯 집 반을 더 얹어주는
백번白番 바둑처럼?

하늘이 인간의 수명을 늘려주는 건
한꺼번에 멸하기 위해선지도 모른다

[프로필]
이영광 : 경북 의성, 고려대 문학박사,  노작문학상 수상, 시집[나무는 간다]외 다수

[시감상]
오십이 된다는 것은 문정희 시인의 시에서처럼 콩떡이 된다는 것이다. 말랑하고 구수하지만 누구도 선뜻 손대지 않는 뷔페의 후식 콩떡이다. 가족, 사회, 어디에 어디라는 곳에서 주역이 아닌 배경이 된다는 말이다. 한 권을 다 읽어도 주인공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러시아 소설이다. 하지만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끝까지 남아 시린 노을을 지켜주는 아직은 제법 따듯한 늦겨울 네다섯 시쯤의 태양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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