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 이어 제천화재가 발생하며 다시 한 번 “안전”이 대두되고 있다. 안전정신이 이념으로 등극하여 모든 이념들을 녹여내는 용광로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 안전주의라는 이념이 정착하길 기대한다. 낯설지만 안전주의(安全主義)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쓴다.
원시시대부터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면 안전사고다. 안전사고는 작은 부주의와 태만에서도 결과는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특징으로 구분되는 인류사의 사건사고와 우리 주변에 널려진 사회적 문제로 직장, 가정과 개인 등 다양한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안전”에 관해 최근의 제천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건물의 화재를 예를 들어보자.
첫째는, 화재의 급격한 발화 원인은 이 건물의 피노트층 주차장에서 발생했다. 주차장의 자동식 스프링쿨러 설치 기준은 200㎡ 이상만 자동식으로 설치하는데 이 주차장은 몇 ㎡가 적다.
주차장 천장의 얼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불이 주차 중인 차들로 옮겨붙으며 화재를 키웠다. 처음의 작은 불은 천장의 스프링쿨러로도 제압이 가능했지만 단 한 개의 스프링쿨러가 없었다.
요즘은 스프링쿨러도 한 단계 진화해서 물 분무 소화 설비가 있어 물을 고압으로 분사한다. 자동 스프링쿨러 설치 대상에서 조금 못 미치는 면적이라도 찜질방·스파와 휘트니스를 즐기는 다중 이용시설인 점을 감안하면 건물주 입장에서는 자동 물분무 소화설비만 했어도 큰 건물을 잘 유지할 수 있고 화재 범죄자도 안됐을 것이다. 물론 29명의 생을 달리한 안타까운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세상은 법으로만 살지 않는다. 건물을 짓고 사업을 하는 사업자라면 인명의 재난이 닥칠 수 있는 부분들을 세심히 살펴 법과 규정에 없더라도 적은 투자만으로도 인명보호와 재산의 상실을 막았을 것이다.
둘째는 소방서의 장비다. 29명 중 20명이 2층 찜질방에서 죽었다. 뛰어내려도 살 수 있는 높이다.
충북 소방본부가 2층에 사람이 많다고 시달한 통신이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통신장비로 휴대폰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20여 분이 증발하는 현장 혼선을 초래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초동진압이 생명인 화재현장에서 적은 인원과 장비의 결함이 만든 합작이다. 타 도시와 달리 충북의 소방 통신망은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충북 소방본부가 확인해서 현대식으로 교체가 필요하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완해야 한다.
이 사례에서 보듯 법으로는 건물주가 주차장 자동소화 시설을 안 해도 되고, 충북 소방청은 통신장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결과는 화재의 진압과정에 주차장 소화시설장비 문제와 소방서통신장비 기술력의 부족이 드러났다. 작은 안전조치가 커다란 문제로 발전하는 걸 막아주는데 얼마나 절실한지를 설명해 준다.
권총 한발의 총탄에서 발생한 암살이 세계 1차 대전의 비극을 만들어 냈고 1차 대전 참가국 세계 각 처에는 지금도 당시 사망한 사람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지만 여전히 세계 2차대전을 발발시켰고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전쟁은 그치지 않는다.
전쟁은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만들어내는 안전사고 중 단연 최고 수준으로, 인류 역사가들은 전쟁을 애써 안전사고가 아닌 필연적 인류사의 과정으로 인식한다. 전쟁이 표방하는 논리는 적들의 섬멸로 나의 승리다.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인류를 살상하고 문화유산과 재산을 소실 파괴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2백 개가 넘는 나라들이 소유한 무기는 각자의 방위 수단으로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수단으로 지구 파멸을 부를 핵무기를 제외하고는 자유스럽다. 그러나 국가 무력이 뛰어난 국가 주변에 존재하는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전쟁에 휘말려 국민이 죄를 지은 명분이나 이유도 없이 애매하게도 전쟁이란 이유로 죽어갔다.
만약 대한민국이 아프리카 중앙부쯤에 위치해 있다면 아프리카 최고의 무력강국 일 테고 주변국들은 대한민국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고 대한민국 국민은 전쟁 위협에서 벗어나 평화를 구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은 핵무기 보유국인 중국·러시아·북한이 접해있어 불행 중 또 불행이다. 작금의 위기의 시점에 처한 대한민국이 생존하는 길에 분명한 처방은 “안전”이다.
안전이란 위험이 없는 평안을 말한다. 위험을 제거하고 회피하고 대응하여 안전을 유지 발전시키면 대한민국은 생존이다. 단, 조건은 어느 누가 만들어 주거나 갖다 주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생존의 대열에 동참해서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인내와 참다운 화합의 정신 발휘로 밀림에서 나침반을 만들고 전호후랑(前虎後狼)처럼 앞문에는 호랑이가 쳐들어오고 뒷문에서는 이리가 쳐들어오는 오늘의 형국을 이겨내야 한다. 이런 난국을 헤쳐나가는데 백가쟁명의 논리들이 있겠지만 나는 “안전정신”을 주창하고 싶다.
세월호의 어린 희생자들이 “안전정신”의 기초를 세워준 교훈을 우리는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사건 사고에 내재한 “안전”이란 키워드를 국민적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것과 더불어 세계사조로 발탁시켜 숭상할 가치로 키워야 한다. 지금까지의 이념들을 안전이라는 틀 속에서 용해시켜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털어내는 정신을 구축해서 세계평화의 근본정신으로 이룩해 보자.
인류는 자연과의 싸움에서 생존했다. 빙하기를 굶어죽고 얼어 죽어가며 오늘의 인류를 연장시킨 것처럼 우리에게는 아직도 큰 희망들이 남아있고 과학의 발달로 안전성도 급격히 높일 수 있다. “안전”의 이념은 적이 없고 분열과 반목이 없다.
문명의 인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시대성을 갖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시대정신이다.
무심코 버린 작은 담뱃불 하나가 산을 불태우고, 안전정신이 없는 분별없는 사람이 숭례문을 불태웠고, 한반도 통일이란 미명으로 6.25전쟁을 야기한 김일성은 500만 명의 사상자와 2천만 명의 가슴아픈 이산가족을 만든 것 또한, 죽이고 파괴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휴머니즘의 결함도 크지만 살리고 건설하고 행복을 주는 사랑의 메시지 “안전”을 도외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안전이념은 이 시대 과학의 급격한 진보로 인류를 파멸할 가공한 사건·사고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척되는 개인에서 가정·사회·국가·세계의 모든 사건 사고를 미리 대비하고 처리하여 안녕과 평화를 유지하는 정신이다. 안전주의가 새로운 이념으로 등극하길 바란다.
- 기자명 박태운
- 입력 2018.01.10 14:35
- 수정 2018.03.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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