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채대표 김포금쌀 (주)제일영농

전류리 봉성산 해맞이객 4천 명에 떡국 대접

매년 1월 1일 17년 째 이어오는 행사

음식나눔은 집안 내력

“5천명까지는 계속 할 겁니다."

하성면 전류리에 위치한 봉성산 해맞이 인파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 지난해에는 4천여 명이 다녀갔다. 특이할 사항은 해맞이 오는 사람들에게 떡국을 대접한다는 것. 한 두 해가 아니라 2000년부터 17년째 이어오고 있지만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청에서 하는 행사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다. 숨은 주인공은 김포대표브랜드쌀 김포금쌀을 생산하는 제일영농 정성채 대표다. 묵묵히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정 대표를 지난달 17일 하성면 마곡로 239번지 (주)제일영농 에서 만났다.

선행은 그렇게 하는 것일까. 손사래부터 쳤다. 음식 나눔은 아버지 대부터 내려오는 집안 내력이었다.

"아버지는 명절에 한 번, 여름에 콩국수 한 번, 1년에 두 번 지역분들께 식사대접을 해오셨어요. 농사 잘 지어 무탈하게 먹고 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시고 여러 사람이 나눠먹으면 자식이 복 받는다 생각하셨죠."

이렇게까지 해맞이행사가 커질 줄은 정대표도 몰랐을 것이다. 지인이나 마을사람들과 음식장만해서 나누려고 시작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정 대표는 손이 크다.

올해는 5천명 분을 준비했는데 AI로 무산됐다. 무산되긴 했으나 자그마치 떡국 5천인 분을, 그것도 추운 1월 한파에 어떻게 준비하는 것일까. 한 번에 650인분 나오는 큰 솥이 두 개, 작은 가마솥이 4개가 동원된다. 몇 해 전 정 대표 후배가 7 백 만 원 하는 터보가마솥을 선물했다. 불을 지피자니 가스는 얼어버려 발전기도 필요하다. 발전기 대여해 준 사람 , 수고한 자원봉사자들까지 떡 돌리고 하다보면 뒷풀이만 한 달이 걸린다고.

봉성산 해맞이 행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그 사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연말부터 뉴 밀레니엄을 맞는다고 온 나라가 들썩였다. 2000년 1월 1일 동창들과 해맞이가기로 하고 정대표가 떡 두 말, 돼지고기 10근, 사과 1박스, 배 1박스, 막걸리 1박스를 준비해 만나기로 한 문수산으로 갔다. 전날 눈이 많이 온데다 해맞이 인파가 몰리자 동창 17명과 함께 강화 혈구산으로 급히 변경했다. 그 많은 음식을 메고 올라가려니 힘이 든 친구들이 "이걸 누가 다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해왔어?"라고도 했지만 내려올 땐 남김없이 다 먹고 내려왔다고. 다음날인 1월 2일에는 각자 한 가지씩 먹을 것을 준비해서 동네 형들과 장대산으로 해맞이를 갔다. 내려와 해장국 집에서 정대표가 "우리 해마다 이렇게 해맞이 하자 밥은 내가 낼게"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떡국이 아니라 소머리국밥이었다. 해맞이를 다녀와 현재 제일영농이 있는 자리에서 소머리를 사다 직접 소머리국밥을 끓여 마을 사람들과 나눴다. 몇 년 지나면서부터 전류리 봉성산 그 무렵만 해도 전류리 봉성산 해맞이객이 많지는 않았다. "소머리 국밥을 우리집에서 끓이니까 드시고 싶은 분들 오셔서 드시라고. 아무나 오셔도 된다고 했죠" 처음에 청했을 때 150여 명이 왔다. 소머리 국밥집 하는 정대표의 지인은 소머리 1개에 150인분 나온다고 했지만 소머리 6개를 샀다. 기왕 하는 거 국물만 드리기도 그렇고 고기 좀 넉넉히 대접해야겠다 싶었다.

소머리 6개를 끓이니 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밥 200~300인 분이 나왔다. 해를 거듭하면서 해맞이 인파가 수천으로 늘었다. 소머리로 하기에는 감당이 안 되기도 했지만 농사를 지으니 떡국이 낫겠다 해서 떡국대접이 됐다.

정 대표는 지난해 행사에 떡국 3890그릇에, 시루떡은 60시루(말)가 나가 족히 4천 명은 다녀간 것으로 추정한다.

“천 만원, 이천 만원이 들어도 좋다. 병이 들면 그 돈 보다 더 들 수도 있다. 우리가 여기서 무탈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것에 감사 한다”

정성채 대표는 단호했다. “우리는 계속해요. 5천명까지는 계속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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