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오투의 교단이야기(4)

여름이 다가오던 어느 날. 반짝이는 눈이 예쁜 ‘박소진’이라는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주변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자란 여자아이의 티가 났다. 첫 느낌대로 아이는 반 친구들과 조심스럽게 잘 어울려 나갔다. 예의도 바르고 수업시간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보통의 여중생이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잘 지내던 아이가 전학 온 지 두어 달 지났을 즈음, 어머니께서 상담하러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와 만나기 전 소진이가 먼저 나를 찾아 교무실로 왔다.
“선생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무슨 일이야?”
“여기서 할 말은 아니라서…….”

말끝을 흐리는 아이를 데리고 빈 교실로 갔다. 둘만의 공간으로 가니 아이가 주저주저하다 말을 꺼냈다.
“저…, 내일 엄마 오시면 저 잘하고 있다는 말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순간 내가 받은 느낌은 ‘뭐야? 할 말이 이게 다야?’였다.
수업시간뿐 아니라 학교생활도 잘 하는 아이라 특별히 부탁하지 않아도 좋은 말만 할 아이인데….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소진이가 털어 놓은 이야기는 반짝이는 눈의 밝음과는 달리 힘든 아이의 이야기였다.
소진이의 어머니는 성적에 관심이 많으셨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밤새 잠도 안 재우고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었다. 요즘 부모들이 워낙 공부에 관심이 많으니 좀 과장해서 말을 하나보다 했다.

그런데 내가 좀 못 믿겠다는 눈치를 보였는지 며칠 전에도 맞았다며 치마를 들어 올렸다. 거기엔 허벅지 전체가 시퍼렇게 든 피멍이 이제는 믿을 수 있겠지 싶은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긴 대화를 나눴다.

지금의 어머니는 소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재혼한 분이다. 소진이가 어렸을 때 친어머니는 약을 먹고 소진이 앞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죽는 모습을 소진이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새어머니는 소진이에게 관심이 많았다. 또래보다 뒤쳐지지 않게 공부를 시키셨다. 저학년 때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공부에 잘 따라갔고 관계도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거나 해야 할 공부를 덜 했을 경우 잠도 안 재우고 공부를 시키셨다. 공부하다 졸면 큰 막대기로 때리셨다. 옷을 입었을 때 티가 안 나는 곳을 골라서 때린다고까지 했다.

아버지도 알고는 계시지만 교육은 어머니가 담당하는 거라 그냥 모른 척 하신다고. 듣기에도 힘든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다행히 어머니가 나와 면담을 한 다음부터는 좀 부드러워지셨다고 한다.

방학이 가까워질수록 아이는 어머니와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할 방학이 두렵다고 했는데….
방학이 끝날 즈음 소진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가정폭력으로 어머니를 신고했고 지금 임시보호소에 가 있다는 나쁜 소식이었다. 어머니께서 방학동안 부족한 공부를 심하게 시켰고 졸다가 많이 맞았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어머니가 잠깐 외출한 사이에 신고를 한 것이다.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어머니는 당황스러워 하며 이야기를 했다.
“소진이가 공부에 대한 기초가 너무 부족했어요. 제가 공부를 시키니까 애가 잘 따라왔고 저학년 때는 공부도 잘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거짓말을 하고 공부도 안하고…. 이혼하면서 두고 나온 딸이 생각나서 정말 잘 키우고 싶었어요. 제가 때리긴 했지만 걔가 당돌한 데가 있어요. 이사 온 것도 아빠 옆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공부 시키려고 온 거에요.”

어머니의 말은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소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난 잘못한 것 이 없다는 거였다. 열심히 소진이를 키웠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냐며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셨다.
소진이의 어머니와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은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분명 ‘사랑’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가정폭력이 신고 된 경우 지역 내 보호센터에 가정집처럼 지낼 수 있는 곳이 있다. 처음에는 임시보호소에서, 그 다음에는 관내 보호센터에서,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거처로 계속 옮겨 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거처가 바뀔 때마다 지내기 괜찮은 곳인지 찾아가 보는 것과 소진이의 말을 들어주는 정도이었다.

소진에게 약간씩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화장은커녕 또래 친구들에 비해 다소 촌스럽게 하고 다니던 아이었다. 그런데 여러 곳을 거치는 동안 가방 속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줬다는 화장품이 들어있었다. 치마가 짧아지고 화장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춘기 아이들의 당연한 변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집에서 다니는 상황이 아니라서인지 걱정이 되었다.

진학문제도 있고 소진이의 상황을 전해줄 수 있는 건 나뿐이라 어머니와도 통화를 많이 했다. 어머니랑 통화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사랑’이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머니도 조금씩 느끼고 계시는 것 같았다.

졸업할 즈음에 소진이는 언니와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됐다. 비좁고 습한 곳에서 언니와 단 둘이 지내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남보다는 가족이 낫다는 소진이의 생각에 나는 물론 언니, 부모님도 동의했다.

고등학교 가서도 언니의 보호 아래 소진이는 학교에 다녔다. 간간히 전해지는 소식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과 만나 식사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명절에도 가족이 모였다는 소식도 들렸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아파했고 또 그걸 표현해 줘서 다행이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씩 풀어가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보며 희망을 보았다. 소진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부모님이 처음이라 실수를 하신 거란다. 힘이 들 때면 말을 하렴. 선생님이 같이 아파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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