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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오투의 교단이야기(2)- 압록강을 건넌 아이

통진중학교 네 명의 교사(이상현, 오유미, 조신희, 조용문)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뜻을 함께 하기로 하고, ‘조이오투’ 모임을 결성했다. 조이오투는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고(joy), 곁에 있어 함께 호흡할 수 있는(O2)모임”이라는 뜻이다. 네 명의 교사는 현장에서 듣고 느꼈던 이야기를 가감없이 기록으로 남기기로 하고, 본지에 연재 기고하기로 했다. 기록을 읽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같이 아파하며 이들의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조이오투의 교단이야기를 연재 5회로 싣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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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휴대폰 벨이 울렸다. 교장선생님 전화다.

“허명철이란 학생 기억해요?”

“네. 저희 반 학생이었습니다. 탈북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어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나요?”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학교 다닐 때 모범상을 받은 기록이 있다면서 사실 관계를 확인해 달라고 하네요.”

“개인적인 사유로 결석이 좀 있었지만, 학교생활은 정말 열심히 하는 모범학생이었습니다.”

“네.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허명철. 근 10년 만에 들어본 이름이다.

명철이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걸까?

명철이는 3학년 초 탈북학생들의 교육 기관인 하나원에서 우리 반으로 전학을 온 아이었다. 이른바 탈북학생이었다. 혼자서 ‘강냉이술’ 한 병의 힘을 빌려 추운 겨울날 압록강을 넘어온 아이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몸매에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아이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빠르게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다. 매 시간 반짝이는 눈을 보이며, 적극적인 질문과 대답으로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 밝은 미소로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명철이는 공부에 욕심이 많았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잠을 자며, 평일에는 늦은 시간까지 영어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북에 어머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하는 성실한 아이였다. 명철이가 지금껏 살아온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였다.

명철이의 사는 모습이 궁금해 가정방문을 했다. 화장지와 약간의 과일을 가지고 집을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누나라는 분이 문을 열며 반겨주었다. 집은 작지만 정갈했다. 명철이의 방에는 작은 밥상이 책상을 대신하고 있었고, 그 위로 펼쳐진 영어책에는 명철이의 공부 흔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교실에 명철이가 보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학교에 등교해 자습을 하던 명철이었기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1교시 시작 직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교통사고 환자가 병원에 들어왔는데, 의식이 없어서 가방 속의 공책을 보고 학교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침대 위의 명철이는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아침 일찍 등교하다가 주차장에서 나오던 아주머니의 차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아주머니도 걱정스런 얼굴로 함께 있었다. 경찰과 아주머니에게 명철이의 상황을 말씀 드렸다. 다행히 깨어났지만, 명철이의 자전거가 역주행을 한 것이라 병원비를 비롯한 많은 부분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명철이는 자전거와 자동차가 부딪혔는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후원해 주시는 분의 도움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 할 수 있었지만 사고 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명철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닿았다. 명철이는 김포에 살고 있지 않고 더 이상 학교도 다니기 힘들다고 했다. 명철이의 얼굴은 어두웠다. 병원비를 대주고, 지금 사는 곳을 제공해 주시던 후원자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고 했다. 당신을 속이고 함께 사는 누나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그래서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명철이와 같이 아파트에 있던 사람은 친 누나가 아니었다.

사정상 중학교 3학년으로 배정을 받았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세 살이 많았기에 오해를 피하고자 그냥 누나라고 말을 했던 것이었는데, 그게 사단이 난 모양이었다. 후원하던 분이 후원을 끊어서 김포에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우선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공장에 꾸준하게 다녀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인천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당장 명철이에게는 졸업식과 상급학교 진학을 꿈꿀 여유가 없었다. 학교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전화연락을 했다. 매일 안부를 묻고, 진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탈북학생 특별전형에 대하여 알려 주었고, 학교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명철이가 사는 곳 가까이에 고등학교가 있어 교육청의 협조를 받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졸업식 날 아주 오랜만에 명철이가 학교에 왔다.

“명철이 왔구나. 잘 왔어. 많이 보고 싶었다.”

“공장 형님께 말씀드리고 왔어요. 아이들과 사진도 찍고 인사도 하고 가려고요.”

밝은 얼굴로 졸업식을 마쳤지만, 그 때가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명철이의 전화번호는 자주 바뀌었다. 명철이의 소식이 궁금해 찾은 ‘싸이월드’ 사진첩에 명철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값비싼 외제차 사진으로 가득했고, 가끔씩 보이는 글에는 돈, 고생, 성공 이런 단어들이 주로 적혀 있었다. 하나원 학교 동기로 보이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며 대략 명철이의 삶을 추측할 뿐이었다. 더 이상 학교는 다니지 않는 듯 했다. 아는 형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명철이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은 어머님도 들어오셔서 함께 살고 있고, 아는 형들과 사업을 해서 경제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학교는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소식이 마지막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10년 만에 명철이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이다.

만약 명철이가 나와 함께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혼자 압록강을 건너와 세상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명철이었다.

경찰서에서의 연락이 나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는 명철이는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소년이었다. 지금은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어머님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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