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운 발행인

사랑하는 마음이 이성 간에 짙어지면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가족 친지에게 알리고 인생 동반자 선언을 한다. 비로소 부부가 되고 하나의 가정이 탄생한다. 자녀들이 태어나고 장성하여 출가하면 부부는 다시 둘만의 가정으로 환원한다. 요즘처럼 노년이 길어지는 세상에서 부부는 든든한 버팀목이요 언제나 그렇듯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사회 속에서 외로움을 가셔낸다.

노년이 되면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다가온다. 지금의 시대는 자식 세대에게 노년을 의탁하지 않으려 자신들의 사정에 맞게 노후준비와 노후생활을 영위한다.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나이 든 세대들의 애환과 고통은 병들고 나약해지고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고 주위의 친구들이 한명씩 사라질 때의 쓸쓸함과 고독함이라고 한다.

모처럼 추석명절이 찾아오고 가족과 친지의 방문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도 잠시, 임시공휴일에 대체휴일 한글날까지 이어진 열흘의 연휴도 막을 내렸다. 누구는 휴가를 통째로 계획하고 누구는 조각으로 나눠 알차게 보냈다는 만족감이 큰 걸 보면 열흘의 긴 휴가는 국민 모두의 행운과 행복이었다.

이번 추석명절 역시 고향을 찾고 성묘를 하는 인파로 경부와 호남으로 대표되는 고속도로는 연일 북새통이었고 열흘을 훌쩍 넘기고 모두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 가족 만남으로 즐거움이 넘쳤던 명절을 상기하면서 새삼 가족이란 무엇인가? 를 생각해 본다.

이 시대 우리 가정들은 대체로 30대~50대까지는 부모와 자식으로, 60대 이상은 부부만으로 구성된 가족들이 대부분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3대가  사는 가족은 드문 세상이 됐다. 노년의 부부는 대체로 각자 살아온 시간보다 부부로 함께한 시간이 더 길고, 그들은 각자의 가족 친지를 포함하여 실타래처럼 엉키고 고등수학의 함수처럼 복잡한 관계들을 다 섭렵하면서 싸우고 속이고 주장하고 타협하는 갈등들의 연속선상에서 희로애락을 쌓아왔다.

반면, 지금의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 기죽이지 않기 위한 무리한 경제적 지출은 활활 타는 허영심과 비뚤어진 자식사랑까지 부부의 행복한 젊은 시절이 소실돼간다. 그들은 자신이 주도해서 발생하는 왜곡들 말고도 자식들의 빗나간 행동에서 더 번민이 크다. 아버지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아들, 짜증만 내는 딸, 30만 명에 달하는 학교 밖 아이들 숫자만 봐도 가정은 살벌한 암초 투성이다. 어찌 보면 인생의 문제들은 사회나 직장보다도 가정에서 가장 많이 태어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의 분노는 사실 가난이 아닐 수 있다. 가난은 극복되지만 파편들로 튀어 오르는 불행의 단초들이 만들어내는 다음 단계는 침묵과 대화의 단절이고 작은 별리들이 만들어지면서 가족의 해체가 이뤄진다. 왜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는가?

부부가 만난 것은 “사랑”이다. 가정의 근본은 당연히 사랑이고 사랑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부부는 부부가 되기 전에 남편으로서, 부인으로서의 의무와 사명도 사랑의 범주에서 결심하고 녹여내야 할 필수적 과제다. 부부로 산다는 건 각자 사랑의 힘으로 상대를 더욱 떠받치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인내라는 걸 인식해야 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며 미소와 부드러움이 항상 존재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부의 조건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모르면 부부간의 양보도, 자녀의 양육도, 양가의 선린적 처신이나 부부 주변의 인사들도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부부는 숙명처럼 주어진 인생의 숙제들을 풀어가고, 특히나 곤란함 들을 수시로 해소하는 감당을 감수해야 한다. 부부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또한 무수히 사랑의 능력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게 부부다.

인간은 나 이외의 복수가 모이면 언제나 문제를 만들어 내는 특성이 있는데 부부 외에 자식들까지 생기면 당연히 문제들은 늘어날 것이다. 살다 보면 가까운 사람의 배신과 질시는 인생의 과정에서 거의 최고에 가까운 고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연에 그러한 일이 없도록 “대화”를 중시하고 활용해야 하는데, 대화란 말과 몸의 표현으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과 부드러운 눈길, 토닥이는 손길, 함께 감동하고 감사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가족의 기본은 언품(言品)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서로 나누는 대화는 비난과 질책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와 호응이고 언제나 변함없이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 경청이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이라 하여 “너”라고 함부로 부르고 비하하는 말을 다반사로 하는 부부, 자녀에게는 세상에 나가 성공하고 비굴하지 않으려면 뭘 어떻게 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널 위해하는 말이라는 말들, 함부로 말하고 일방적으로 설득하는 말들이 만들어내는 간극은 아쉽게도 때로는 비극으로 발전한다.

이야기를 비약해 보자. 인간은 700만 년 전에 인간과 침팬지로 분리 진화되었다고 진화론자들은 말한다. 화석 분석을 토대로 DNA가 변화한 시점들을 기준으로 역 추적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발표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백만 년이 흐르고 지금의 우리들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 6~7만 년이 흐른 지금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진화는 멈췄다고 주장한다. 조만간 인류는 인공지능을 통해 초 인류의 시대로 마지막 진화를 할 것이라는 예견도 한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어쨌든, 역설적으로 인간의 조상은 짐승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먹이로 하는 최 상위 포식자다. 우리 몸속에서 감지되는 짐승의 DNA는 끊임없는 욕망과 채워지지 않는 욕심의 확장이고, 반면, 교육을 통하고 질서와 법률로 단련되면서 생성한 이성적 사고들이 서로 간 수시로 충돌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감동과 감사를 느낄 줄 아는 감정이라는 정서를 만들어 냈다. 수많은 감정의 갈래에서 지극한 하나가 “사랑”이리라.

“사랑”이란 무엇인가? 짐승의 DNA를 초월하는 인간의 감정이다. 그것은 인간이 뿜어내는 최고의 능력이요 희열이고 자랑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랑을 아끼는 마음, 정성을 다하는 마음, 베푸는 마음, 섬기는 마음 그리고 철저한 자기희생으로 정의한다. 시대적 관점에서 “부부”가 칭하는 범위는 막대하다. 부부에서, 가족에서, 사회로, 국가로 “사랑”은 그 정신을 기초로 튼튼해야 한다. 그러면 평화다. 부부의 사랑이 가정에 충만하고, 사회는 배려로, 국가는 공정으로 다스려져야 하는데 그 필수적 요건은 “부부”다. 부부는 사랑이고 서로가 격려와 응원으로 함께 호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릇, 부부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사랑의 城(성)을 쌓을 때 돌 하나하나 귀중한 약속들을 불어넣어 정성을 다하라. 그리하면 대대로 승리하는 부부들이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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