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前 부산추모공원을 찾았다.  작년 추석에는 발디딜 틈도 없었고 주차할 곳이 없어서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아주 여유롭게 납골당을 방문할 수 있었다. 먼저 어머니의 납골당에 들어가서 방석을 깔고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드렸다. 작년 8월 27일 토요일 아침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 상황은 어머니를 상급병원 응급실로 옮겨서 낫게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는  "그냥 집으로 가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셨고 그것이 곧 유언이 되었고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엔들 알았으랴?

앰블란스를 타고 상급병원으로 가는 순간을 필자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큰 병원 응급실에 도착 후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후 심폐소생으로 어머니의 장기는 망가지고 콩팥도 탈이 나서 결국 4일 만에 돌아가셨다.  우리네 인생에 만약은 없지만, 그때 집으로 모셔 어머니를 당신의 살던 집에서 운명하게 하셨다면…??? 현행법상 인공호흡기를 기계 호흡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한번 시작한 이후로는 보호자나 환자가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제거하였을 경우, 의사는 살인방조죄에 해당되어 치료를 그만 두지 못한다. 그 당시 어머니도 기계 호흡을 하지 않으면 뇌에 저산소증으로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고 향후 예후가 안 좋을 수가 있어서 인공호흡기를 권고했을 것이다. 그 짧은 찰나에 인공호흡기를 하지 않겠다고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마는 상급병원으로 이송하지 말고 집으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뒤돌아보면 후회스럽다. 하긴 우리 인생은 항상 후회와 여운을 남기고 있쟎은가? 드라마를 보면 부모들이 돌아가실 때, 자식들을 불러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고 유언을 남기는 장면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드라마일 뿐이다.  필자는 어머니의 유언을 듣지도 못했고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했다.

다음으로 어머니 옆방의 아버지 납골당으로 들어서서 아버지의 명패를 보는 순간 닭똥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어머니께서는 불면의 고통과 호흡곤란의 고통으로 죽음을 예고하셨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식들에게 자주 던져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충격도 배로 컸다. 아버지도 묵상기도를 드리고 대화를 시도하였다. "아버지!!! 천국에서 어머니를 만나셨죠? 천국이 너무 좋아서 제 꿈에 나타나시지 않는 거죠?"하고서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였다. 지병 때문에 매일 약을 먹고 힘들어 하신 아버지였지만 운동도 매일 하시고 식사도 잘하시고 여행도 자주 다녔던 아버지였는데 침대에서 떨어져 뇌출혈로 응급실 실려 가시고, 뇌수술 후 폐렴을 이기지 못하고 가래가 기도를 막아서 돌아가셨다.  운명하시는 날,  필자는 동생들에게 기도삽관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만약 그때 그런 조치를 했다면 아버지는 목숨을 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어머니처럼 식물인간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머니에게도 갈 수 없다면 그것으로 가족들도 괴로워한다면 아버지의 유언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여러번 수십번 수백 번 생각해도 기도삽관을 하지 않았던게 옳았는지 아니면 불효를 저지른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도 천국에 가셨고 어머니를 반드시 만났을 것으로 확신한다.  필자도 하나님 부르시는 날,  천국에 올라가 부모님을 만날 것이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열심히 해라"이듯이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 모셔라"는 말이 너무나 간절하게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마지막으로 힘차게 부르고 싶다. "어무이… 아부지… 사랑합니다. 당신들로 인해 저는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김형철
김포대학교
관광경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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