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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 재혼

재담을 끝내고 나는 다 식은 국밥에 숟가락을 들이밀었습니다. 뺑덕어멈이 뜨거운 국물을 한 국자에 넣어 주었습니다. 객주도 밥을 먹고 나서는 베 한 필 꺼내 내게 주었습니다. 저는 사양했지만 모인 손님들에게 재담 하나 더 부탁한다고 하자 할 수 없이 승낙했습니다.
“예전에 서울에 한 대감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높은 학식과 고매한 인품으로 존경받는 분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작은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아들은 잃었지만, 며느리는 집에 남아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한참 나이에 자식도 없으니 평민이라면 개가하겠지만, 양반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수절 못하면 양쪽 가문의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책을 읽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밖으로 나와 서성거리던 대감은 별채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곳에는 과부가 된 며느리가 혼자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겁탈하려고 들어온 괴한인가 아니면 몰래 정을 통하는 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먹을 움켜쥐었습니다.

“며느리의 방에 촛불이 켜져 있는데 웬 사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말을 듣고 있던 손님들은 침을 삼켰습니다. 그러나 다음 말에 경악합니다.
“대감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간부가 아니었습니다. 베개에 남편의 옷을 입힌 것이었습니다. 과부는 남편이 살아있는 듯이 다정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옷을 주섬주섬 벗고는 베개를 꽉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대감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재담을 듣고 있던 손님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고 뺑덕어멈은 눈물을 찔끔거렸습니다. 나는 말을 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대감은 술상을 차리게 하고는 아직 장가가지 않은 종을 불렀습니다. 영리하고 충직해서 어렸을 때 대감이 글도 가르친 노비였습니다. 잔에다 술을 따라 노비에게 권했습니다.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노비에게 대감이 눈물을 글썽이며 무언가 말했습니다. 노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듣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에 대감의 집에 초상이 났습니다. 과부 며느리가 목을 매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열녀라고 모두 칭송하면서 초상을 치르는 틈을 타서 충직하다고 믿었던 노비가 집안의 금붙이를 훔쳐 도망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분개한 식구들이 추적하자고 했지만 대감은 극구 말렸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벼슬을 그만둔 대감이 수행하는 종도 뿌리치고 홀로 유람길에 떠났습니다. 여기저기 다니길 몇 개월 하니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가는 곳마다 노인 과객에게 잘 곳, 먹을 것을 주어 세상인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산골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의 한 아이가 귀티가 났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리는 것이었습니다. 대감은 아이를 앞장세우고 집을 찾아갔더니 아이가 엄마가 나왔습니다. 바로 자신의 둘째 며느리였던 아낙이었습니다. 시아버지를 방에다 모신 아낙은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밭에서 일하다 아이의 말을 들은 주인이 급히 와서 대감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바로 죽은 것으로 속인 며느리를 데리고 도주한 노비였습니다. 부부는 시아버지가 챙겨준 금붙이를 팔아 한적한 시골에 와서 전답을 마련해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습니다.

대감은 아이를 손자처럼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고는 부부의 행복한 생활을 보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에 감동했나 봅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뺑덕어멈이 코를 핑하고 풀고는 말했습니다.
“혹부리! 과부가 얼마나 괴로운지 알지? 그러니 당장 살림 차리자.”
이놈의 여편네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주절거리자 저는 황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젠장, 밖에는 염라대왕이 떡 버티고 있는 게 아닙니까. 염포교가 나직하게 묻습니다.
“풍수장이 놈은 지금 어디 있나?”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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