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길을 따라가면 용화사에 이른다.

서해바다 밀물이 조강(祖江)의 강벽을 치고 천둥소리를 내며 올라가다 전류나루 앞에서는 강물을 태극으로 휘감으며 용틀임을 한다. 다시 그 힘으로 운양나루를 거쳐 마포까지 뻗어가는 광경은 용이 물속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을 상상할 정도로 위용이 대단하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조강과 전류나루를 찾을 때마다 물의 기상을 청소년들이 직접 보고 체득하는 교육장소로 활용할 시기를 기다린다.


江에서 山으로 이어지는 상상의 동물 용(龍)의 이야기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다는 용강리 용호사(龍虎寺)를 비롯하여 흥룡사(興龍寺). 용연(龍淵). 용허리, 용부리, 여의주, 용왕굿 등 용(龍)과 연관된 이름을 땅위에 지도를 그려보며 조강에서 밀물을 따라 올라가면 하성면 전류리 용바위를 지나 운양나루 용화사(龍華寺) 전통사찰에 이른다.

조강을 포함하는 한강에는 서해바다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고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산 검룡소에 들어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강뿐만 아니라 용의 설화는 물과 육지에 다양하게 있다.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던 백제는 수호신인 용이 침공하는 당나라 선박들을 백마강에서 뒤집어 마지막 남은 왕궁을 점령하지 못하게 되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용이 좋아하는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았다는 조룡대가 부여에 남아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은 죽어서 동해를 침입하는 왜구를 막는 호국용이 되겠다고 했다.

하늘의 왕은 독수리요 땅의 왕은 호랑이며 물의 왕은 용이라 한다. 용은 신비스럽고 영적인 동물이다. 물을 주관하는 용왕신(龍王神)은 칠성신(七星神), 산신(山神)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삼신(三神)이며 용은 사람들의 생명수인 우물부터 농사에서 사용하는 두레 깃발과 어부의 고기잡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물은 하늘과 산과 바다와 직결되어 있듯이 용의 신화도 산과 하늘과 땅과 바다에 전해 오며,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하고 왕이 입는 옷을 용포(龍袍)라 했듯이 龍은 위로는 국가를 수호하는 의미부터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龍을 주역에서는 잠룡, 현룡, 비룡, 항룡이라 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변화하는 때에 지켜야 하는 인사(人事)의 도(道)로 설명했다. 불교에서는 미륵을 상징한다. 용이 이끄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은 피안의 세계로 가는 지혜의 배이며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중생의 염원을 상징한다. 절에는 용과 여의주를 조각한 형상들이 있다. 여의주(如意珠)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보배로운 구슬로 공덕을 상징한다. 또한 여의주만 구하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손오공이 갖고 있는 여의봉처럼 말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용의 이야기와 사람의 도리를 알려주고 있는 유교의 용과 지혜를 상징하는 불교의 용은 사람들을 용화세계로 인도하는 미륵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김포는 물의 문화가 반이요 땅의 문화가 반이다. 그중에서 물과 연관된 불교는 운양산에 있는 용화사(龍華寺) 미륵부처님의 설화다. 용은 미륵을 상징한다. 용화사에는 미륵부처님이 있다.「김포시 운양동 대촌부락에 가면 한강변에 용화사가 있다. 조선 태종 5년 4월 2일에 정도명(鄭道明)이 나라의 조곡을 상납하고 배를 타고 한강을 내려오다가 물참이 되어 운양리 도당산 앞에다 배를 대고 물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정도명이 잠이 들어 꿈에 어떤 석불이 현몽하여 이르기를 “나를 운양산에다 봉안하여 주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잠이 깨어 닻을 잡아 당겼더니 그 닻에 석불이 걸려나왔다고 한다. 그는 꿈과 현실이 너무도 같음에 이상히 여겨 꿈대로 석불을 운양산에다 업어다 모시려고 하였다 한다. 석불을 등에 업고 산을 오르다가 힘이 들어서 땅에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업으려 하니까 땅에서 떨어지지가 않아서 동리 사람들을 모아 나르려 해도 석불은 내내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 자리에 봉안키로 하고 자기 배(船)를 뜯어다 법당을 짓고 도명은 중(僧)이 되어 그곳에 영주했다. 그 후 법당 앞에서 뒷짐을 지거나 담배를 피워 물고 지나가면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김포군지(1992)에 있는 전통사찰 용화사 창건 설화다. 

운양산은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는 곳이다. 강둑을 쌓기 전에는 용화사 아래까지 강물이 들어왔고 나루터가 있었다. 용화사는 인근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이 소풍을 왔던 장소라 한다. 운양산에는 마을 사람들이 지내는 산신제 터가 있다. 재단도 소박하다. 벚꽃이 피는 사월에 용화사에 올라 때로는 밀물이 되고 때로는 썰물이 되면서 순환하는 한강을 바라보며 지혜를 체득하는 명상의 터가 되고, 때로는 한강에 잠겨 있는 잠용(潛龍)이 되고 때로는 하늘을 나는 비룡(飛龍)이 되어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며 세상을 평화 시대로 이끄는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이 되기를 소원한다. 쥐꼬리만 한 권력을 가지고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사람을 보복하는 술수들은 그만 사라지고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는 지혜를 이루어 모든 사람들이 현자(賢者)가 되기를 바란다.
 

정현채
통진고등학교 교사
독립문화콘텐츠활동가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