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이래 한민족을 대표하는 묘제가 돌무덤이다. 한국 강단사학자들은 돌을 단순한 소재의 하나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돌 무덤에 깃든 요긴한 사징들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사실 한국 역사학계의 구조적 비리는 너무 엄청나서 어찌보면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한국 강단사학계에서는 고고학자들이 한국 상고사학회를 조직하여 한국 상고사 연구를 사실상 독점해 왔다. 상고사와 관련된 우리나라 역사서가 이른바 《환단고기》와 《규원사화》·《부도지》 등인데, 한국 강단사학계는 저 사서들을 몽땅 위서로 규정해놓고 인용하지 말도록 강제해 왔다.

 그러다보니 역사책을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자연스럽게 상고사 연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국 고대사학회를 조직하여 주로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드물게는 진수의 《삼국지》 등 중국 사서에 의지하여 삼국시대 이전의 영역을 넘나드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렇다할 성과는 전무하다시피하다. 그 결과 한국 상고사 연구는 김원룡을 비조로 하는 고고학자들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김원룡은 일제시대 한국 상고사를 유린한 일본인들에게서 역사학을 배웠다. 그는 해방 이후에도 일본인 스승들의 매개로 일본 우익들과 아주 은밀하면서도 깊은 친분을 맺게 된다. 이런 김원룡이 한국 상고사학계를 철통같이 장악했으니 나라는 해방이 되었어도 한국사는 일제시대보다도 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시름시름 죽어갈 수밖에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설마’하며 그 ‘설마’가 역사 잡는 세상을 방치해왔다. 현재 김원룡과 그의 제자들은 마피아보다 몇 천배 더 사악한 ‘사피아’로 변해서 한국 상고사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가는 중이다.
 


사피아들에게 장악된 한국 상고사의 현장을 직접 살펴보자. 이 사진은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7~8만기의 거석 무덤이 산재한다. 그 중 무려 60%가 넘는 5만 여기의 거석 무덤이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다. 거석무덤 관련 연구는 고고학계의 몫이다. 그런데 저들이 거석무덤에 관해 과연 어떤 연구를 진행했을까?
 김원룡이 쓴 《한국 고고학 개설》은 한국 고고학도들의 경전이다. 이 책에서 고인돌(거석무덤)에 관한 연구는 고작 4쪽이 전부다. 그나마 그림을 빼면 2쪽 남짓하다. 고인돌이 분포한 지역을 나열하고 한반도에 고인돌이 가장 집중되어 있다는 것, 한국의 고인돌을 다른 지역의 고인돌과 연결시켜 이해해서는 안 되고 단지 시베리아의 석상분이 한반도 서북부에서 고인돌로 확대·발전되었다는 것, 그리고 고인돌 형태에 대한 설명, 서기전 3세기경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등이 고작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고인돌들은 한국 상고사에서 하나의 이정표 같은 존재다. 고인돌 무덤에서 비파형 혹은 세형동검이 출토된다. 고인돌 무덤은 한반도에서 국가가 등장한 역사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징이다. 그런데 이것을 단 2쪽으로 얼버무려 덮어버린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 이것이야말로 저 악질적인 사피아들이 어떻게 우리 민족사를 유린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저들의 연구는 민족사를 살리는 연구가 아니라 민족사를 죽이는 연구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녹을 받아 대한겨레의 역사를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집단이다. 대한국민 국민으로 사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도대체 전 세계 어느 나라에 자국의 민족사를 스스로 깎아내리려고 저토록 발악하는 역사학자들이 있는가?

우창수
민족사바로세우기
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bwwji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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